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시작된 중국 여행은 단순히 낯선 타국을 밟는 여정이 아니라 우리나라와의 복잡하고 깊은 인연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침략과 지배의 아픈 역사부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상호 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빈번한 문화 교류까지, 중국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가까운 거리만큼 자연환경도 유사해 멀리 타국에 왔음에도 고향 같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만큼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무궁화 가로수였다. 우리나라의 국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중국 거리에서 더 흔하게 가로수로 심겨 있는 모습은 소중한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생활 속에서 멀리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귀한 우리 것이 타국에서 '친근한' 가로수로 존재하는 이 상황을 보는것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우리나라가 널리 알려졌지만 귀한 대접은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이는 과거 우리가 중국을 향해 품었던 '크다는 것을 알지만 무시하고 싶었던' 심리와 유사한 이중적인 정서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정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받듯, 중국에서 만난 무궁화의 반가움과 동시에 가로수라는 '평범함'이 주는 불편함이 공존했다.
좋아하는 배롱나무꽃과 고향 같은 플라타너스 길을 만난 것은 위안이 되었지만, 자세히 보니 중국의 플라타너스는 우리 것과 달랐다. 매끈하게 잘 커 시원한 그늘을 이루는 한국의 가로수와 달리, 옹이가 많고 잎이 작으며 무참히 잘려나간 듯한 모습은 애처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 플라타너스는 마치 상해 임시정부에서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과도 연결된 듯하다.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기틀을 마련해 준 고마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천대받고 있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 분노를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리고 싶었던 자기 자신 안의 부족함, 즉 '옹이 많은 중국의 플라타너스'와 같은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중국 도시 거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심 속 풍부한 녹지였다. 우리나라처럼 잘 가꾼 공원이 아니라, 고가도로 아래 차가 달려야 할 공간에 펼쳐진 녹지 길 자체가 그대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는 도시 정책의 차이를 시사하며 관점을 달리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
또한, 도심 곳곳에서 나타나는 물길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중국 문화의 근원임을 보여주었다 다. 건축물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는데, 뾰족하고 높은 지붕은 순하고 선이 고운 한국의 건축물과는 대비되어 민족성의 차이를 엿보는 듯했다.
상하이의 세계적인 야경과 하룻밤 전기료가 수억에 달한다는 이야기는 실리적인 중국인들 속에 숨겨진 과시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큰 것'과 '오밀조밀 세밀한 것'이 공존하며, '만만디(慢慢的)'가 너그러움인지 게으름인지 모호한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복잡성을 대변한다.
이제 삼국지가 중국의 역사만을 넘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듯, 중국은 더 이상 고립된 타자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약소국의 설움을 풀어놓았던 임시정부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안타깝고 서글픈 역사 속에서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이성이 끝을 맺어야 한다. 중국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아름다운 끝을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은 이번 여행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가까운 듯 낯선 중국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미래의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