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에서 문학을 다시 만나다

by 우선열


2025년 '한국수필' 가을 문학기행은 화천 문학관 방문이었다. 일반적인 화천 관광이었으면 포함되기 쉽지 않은 이들 문학관을 찾게 해준 것은 수필협회 여행 기획자들의 문학에 대한 안목과 애정 덕분이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를 이태극 문학관과 이외수 문학관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오래된 형식과 낯선 감성 속에 깃든 문학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태극과 이외수, 두 문학관에서 얻은 울림이 크다

먼저 찾은 곳은 이태극 문학관이었다. 시조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태극 선생님의 이름은 내게는 낯설었다. 시조는 고전의 언어, 박물관 속 유물처럼 느껴졌고 내가 쓰는 글과는 다른 세계라 여겨왔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말하면서도 나는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옛것은 그저 그리움의 그림자였고 나는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수경재배 식물처럼 살았다. 그날 문학관을 찾기 전까지 내 문학적 시야가 얼마나 얕은지도 몰랐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선생님의 육필 원고였다. 지우고 다시 쓴 흔적, 번진 잉크, 정성스레 눌러쓴 글씨.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손글씨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 시조에 대한 내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늘 마음속에서 그리지만 정작 가까이 다가가기엔 망설여지는 거리감. 육필 원고 속의 단정한 글씨를 바라보며 시조는 단순한 옛것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과 깊은 사유를 담아내는 가장 정갈한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짧은 형식 안에 자연과 인간, 시간과 감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느린 호흡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시인의 마음 같았다. 시보다 시조에 더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자각이 그 순간 내게 왔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리 것에 마음이 간다. 한복의 고운 선, 고가구의 묵직한 세월, 옛 그림의 여백, 그리고 시조의 절제된 울림. 그것들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빠르게만 달려온 지금의 나를 멈추어 서서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반성의 창이 된다. 젊은 시절 숨 가쁘게 질주했다면,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지금의 시간은 시조의 느린 사색과 어울릴 듯했다. 이태극 선생님의 시조는 바로 그 창 중 하나였다. 고전적 형식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철학을 담아낸 작품들. 그 안에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놓치고 외면했던 우리 것의 가치를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온고이지신’이란 말이 진부함을 넘어선 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이외수 문학관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가고 싶지 않았다.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던 그의 파격적인 언행과 기이한 행보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 ‘나와는 맞지 않는 작가’라고 단정하며 그의 글을 깊이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문학관 앞에 서는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두꺼운 선입견 속에 갇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단지 나와 조금 다를 뿐이었다. 다름은 불편함이 아니라 호기심의 시작이며 세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감성마을 이외수 문학관’은 산 깊은 곳, 구불구불한 길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자연이 주인인 마을, 감성이 살아나는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했다. 독특한 건축물과 시석림, 하늘이 천장이 되는 중정은 자연과 문학이 하나 되는 공간이었다. 처음엔 불편했던 이 공간이 전시실을 따라 걸으며 점차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의 삶과 작품 세계는 단순히 ‘기인’으로 요약할 수 없었다. 치열한 집필의 시간, 독특한 상상력과 날 선 현실 인식, 그리고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라는 좌우명. 그 모든 것이 글쓰기를 생의 중심에 두었던 작가의 진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선입견으로 무장한 내게 그의 파격은 돌출적인 행동이 아니라 감성을 회복시키려는 치열한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현실의 비루함을 벗어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물질만능의 시대를 향한 저항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위로였다. 한때 ‘트통령’이라 불리며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던 모습조차 세상과 벽을 허물고 다가가려는 그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 그림처럼 자리한 문학관을 돌아보며 나는 비로소 작가 이외수를 온전히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작가의 본모습이 아니라 언론과 소문이 만들어낸 그림자였음을 깨달았다.

이번 화천 여정은 문학을 향한 나의 시선을 다시 정돈해준 시간이었다. 문학을 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우리 문학의 뿌리와 다름의 가치를 외면해왔음을 반성한다. 이제 그 거리감을 좁히고 싶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내 안에 새기기 위해 이태극 선생님의 시조처럼 절제의 언어로, 이외수 작가처럼 감성의 언어로 마음을 빚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 그 길 위에서 내 편협했던 시선이 조금은 더 넓어졌기를,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