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거리에서

by 우선열



11월의 시작이다. 11월은 참으로 애틋한 달이다. 12월처럼 막다른 골목 같지는 않지만 결승점을 앞두고 마지막 힘을 짜내야 하는 마라톤 주자의 심정이랄까? 연인과의 마지막 이별 여행을 계획하는 마음이 이러할까? 안도의 숨을 내쉬기에는 짧고, 포기하기엔 아쉽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거리를 서성이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곱게 물들어 서러운 단풍과 밟히는 낙엽은 11월 달력 속 날짜들인 듯 안타까움을 더한다. 앉지도 달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마음만 바쁜 달이다.
20대 후반, 내 마음도 그랬다. 쫓기는 듯했지만 마음 놓고 달릴 수도 없었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도 새로운 시작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곧추서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 무렵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결혼 적령기'라는 사회적 압박이었다. 안정된 직장과 학벌, 단정한 용모, 밝은 성격까지.당시 사회적 잣대로고 나무랄 데 없는 신붓감이었지만 결혼이 이유 없이 늦어졌다. '노처녀'라는 딱지는 무언가 부족하거나 눈이 지나치게 높거나 성격이 괴팍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불렀다. 결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갈등은 더 심했다. 자기 연민이랄까 방황이랄까 좌표 잃은 작은 배처럼 망망대해에 떠도는 듯했다. 그때 만난 것이 '11월의 거리'라는 흑백사진이었다. 세상이 정지되고 찬 바람이 불어 나올 듯한 사진 속 거리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책임져야 할 미래라면 나이에 떠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비로소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 보였다. 방향도 속도도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삶의 굴곡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 나는 종종 그 사진을 떠올린다. 혼자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해마다 크든 작든 11월의 갈등을 겪고 지나가지만, 이번 11월은 유난히 울림이 크다. 그때, '11월의 거리'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특별한 마음이다. 내게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질 것만 같다. 물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이제 시작해도 괜찮은 건지' 스스로 묻고 있다. 이미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11월의 거리'에 혼자 서 있다는 뜻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생의 마지막 즈음에 "나는 2025년 11월에 다시 '11월의 거리'에 섰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있지만, 이만큼 살아왔으니 그것으로 되었어. 초라한 모습이라도 이게 바로 나야. 내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 이만하면 되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11월은 이렇게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