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채비

by 우선열

기습이었다.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기온은 좀처럼 오를 줄 모른다.
이렇게 겨울이 시작되는 걸까. 가을은 스쳐 지나가듯 짧아졌다

가을비가 내리던 기간을 제외하면 맑은 하늘을 본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가을 패션의 대명사였던 바바리코트는 설 자리를 잃었다.
계절을 잃은 사람들은 반팔부터 패딩까지 뒤섞인 옷차림이다.
환절기마다 옷장 정리에 몸살을 앓던 나는 이번엔 한 단계를 건너뛰었다.

여름 옷을 정리하며 곧바로 겨울 옷을 꺼냈다.

혹독한 더위 뒤엔 맹렬한 추위가 온다지만, 지구 온난화를 생각하면 이번 겨울도 그리 춥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각 얼음 위에 선 백곰은 상상 속 그림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겨울의 상징이던 ‘삼한사온’도 이제는 사어가 되어버렸다.
기온이 낮아졌다지만 영상의 기온을 웃도는 날이 많다.

사람들이야 옷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나무들은 제자리에 선 채 날씨의 횡포를 견뎌야 한다.
고운 단풍으로 시작되던 가을이었건만,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 되어 떨어진다.
‘이번 추위가 지나면 다시 가을날을 회복하겠지’ 기대해 보지만
한번 낮아진 기온은 다시 오를 줄 모르고 시간만 흘러간다.
이렇게 겨울이 오고 있다.

잠시 기온이 풀리는 듯 하니 일제히 단풍이 시작된다. 쫓기듯 황망한 모습이다.
단풍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낙엽 되어 떨어지는 통과의례 같기만 하다.
고와서 서러웠던 단풍들이 설 자리를 잃으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실종된 가을,

이제는 ‘가을’이라는 단어도 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어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여름 옷을 개어 넣는 손길이 착잡하다.
뒤섞이는 계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시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때그때 변화에 따라야 한다.

게으른 손길 덕에 이번 계절의 옷 정리는 가을을 건너뛰었다.
한 단계 번거로움을 덜었다는 안도감보다 잃어버린 가을에 대한 미련이 더 크다.
이제 막 단풍이 절정이라 하니 계절을 맞는 내 태도가 다소 성급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아마 추위에 취약해진 몸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고,
철 모르던 시절, 당연히 누리기만 했던, 어쩌면 과소비였을지도 모를 자연의 혜택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철을 잃은 듯한 이번 가을, 마음속에 또 하나의 철을 담는다.
철에도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