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거리에는 김이 폴폴 나는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군고구마, 붕어빵, 호떡, 어묵 같은 겨울 음식들이다.
언제부턴가 편의점 호빵이 겨울을 알리는 서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김이 나는 호빵을 나눠 먹는 젊은이들의 정다운 모습에서 계절의 온기를 느꼈다.
나는 성격이 수줍음이 많아 이런 거리 음식은 늘 그림의 떡이었다.
어쩌다 친구들과 몰려가거나 포장해 와서 집에서 식은 것을 먹는 게 고작이었지만.
거리에서 군고구마 봉지를 품에 안으면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따뜻한 온기, 구수한 냄새에 절로 행복해지곤 했다.
군고구마는 주로 아버지 품에서 나왔다.
퇴근길, 아버지 손에 들린 간식 봉지는 그 시절의 기쁨이었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음식은 따뜻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먹거리가 흔해졌지만 차가운 음식이 많다.
한겨울에도 ‘아아’를 외치며 얼음 든 커피를 마신다.
가는 곳마다 난방이 잘 되어 있고 옷차림도 좋아져 겨울 추위가 무섭지 않다.
요즘엔 거리에도 난방이 되어 있어 대중교통을 기다릴 때도 추위에 떨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손에 입김을 불고 목을 길게 빼고 버스를 기다리던 시절은 이제 없다.
참 좋은 세상이다.
먹거리도 추위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맛을 찾는다.
거리마다 맛집이 생기고 소문이 나면 긴 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장이 반찬’이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저마다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 나선다.
맛있지만 따뜻하진 않다.
자꾸만 더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게 된다.
먹는 즐거움은 잠시 곧이어 다이어트의 강박이 따라온다.
“입안의 10초가 평생 둔부에 붙는다”는 말을 사춘기 시절에 들어야 했다.
군고구마 하나 앞에서 행복하던 시절은 아니다.
진수성찬 앞에서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한다.
이래저래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불평은 생긴다.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엄마처럼 결국 선택의 문제다.
매일 불행할 것인가 매일 행복할 것인가,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며칠을 다이어트에 시달릴 것인가
식욕을 조금 참아 칼로리를 조절할 것인가.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새벽 시간,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청정한 새벽 공기 속,
아직 잠에서 덜 깬 의식 사이로 손에 쥔 따뜻한 찻잔의 열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아버지 손에 들려 있던 간식꾸러미의 따스함이다.
공복의 위장을 달래며 명징한 새벽 기운을 감지하고 온몸으로 따스한 기운을 느낀다.
내게 따스함은 그리움이자 기쁨이다.
새벽 차 한 잔에 담긴 조용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