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트로풍 패셔니스타

by 우선열

유행은 돌고 돈다. 미니스커트에서 긴치마로 짧은 상의에서 긴 것으로, 타이트한 디자인에서 펑퍼짐하게, 소매가 넓었다 좁아지기도 하고, 깃 형태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유행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같다. 유행이 지난 옷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패션 센스가 민감하지 못한 나는 유행하는 디자인이 한참 인기가 치솟다가 시들해질 무렵에야 눈에 익숙해진다. 자기주장이 분명하여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 만을 고집하는 패셔니스트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 처음에 낯설고 보기 힘든 디자인이라고 폄하하다가도 눈에 익숙해지면 좋아 보인다. 내가 유행하는 옷 디자인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면 그 유행은 끝물이라는 말도 되겠다. 뒤늦게 장만한 새 옷을 유행이 지났다고 버릴 수는 없으니 그냥 입거나 보관해 둔다. 내 옷장엔 유행 지난 30 년 된 옷들도 남아있다. 유행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옷도 있지만 다시 유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가장 오래 낯설었던 디자인은 쫄바지였다. 쫄바지에 펑퍼짐한 상의를 입는 것은 그런대로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상의와 하의가 모두 타이트한데 상의도 짧아 배꼽이 드러나는 옷은 보기는 힘들었다. 그런 옷을 입은 젊은이들을 보면 공연히 민망해져 시선을 어디에 두워야 할지 난처해졌다. 내 딸이 배꼽이 드러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딸이 없는 내 처지가 다행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아직 쫄바지가 몇 개 남아 있다. 긴 상의를 입어 허벅지까지 덮이고 종아리만 살짝 드러나면 날씬한 모습이 보기 괜찮다. 김밥패션이라는 긴 패딩이 답답해 보이는데 쫄바지를 입으면 좀 덜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긴 패딩에 넓은 바지는 활동도 불편하다.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패딩 코트는 입기 편하여 긴 길이가 마뜩지 않았어도 입을만했다. 한동안은 긴 패딩이 유행하더니 이젠 패딩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 긴 패딩은 보온 면에서는 좋지만 불편하기는 했다. 옷에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짧은 패딩이 유행한다면 보온성과 편리 성을 같이 누릴 수 있을 듯하다. 더 다행인 건 내 옷장 속에는 김밥 패션이 유행하기 전 짧은 패딩 옷이 몇 개 남아있다. 새 옷을 장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하고 개성이 강한 스타일도 못 되니 나는 항상 유행에 뒤처지는 옷을 입는다. 경제적인 면도 고려한 옷차림인데 유행이 돌도 도니 자의 반 타의 반 나는 항상 레트로풍 차림이었다고 주장해 본다. 나름 고집 있는 패션니스트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