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똥도 약에 쓰려면 구하기 어렵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꽃도 보아주는 이가 있고 오가는 이에게 이리저리 채이던 작은 돌이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내게 지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주 긴요하게 쓰일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어머니는 "비단 고르려다 삼베 고른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어리석은 눈썰미를 탓하는 말씀이셨지만 인생무상의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비단 옷이 아름답고 촉감도 좋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쌓아 놓은 비단 마다하고 삼베옷을 입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에만 정신이 팔려 훗날 닥칠 일을 외면하고 있다
내 휴대폰 갤러리는 언제나 만 원이다. '저장 공간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뜬다.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컴맹이다. 쓸모없는 사진을 한 장씩 지워보기도 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다. 찍는 속도보다 지우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면을 찍어도 거리와 미세한 각도, 셔터를 누르는 시점에 따라 천차만별 다른 사진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고 잘 찍은 사진을 보며 감탄도 잘한다. 다만 어떻게 해야 그런 사진이 나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지식이 아니라 감각의 차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내 둔한 감성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일이다
내가 택한 방법은 무조건 많이 찍기이다. 야구선수가 홈런 한번 치기 위해 수백 번 공을 쳐내는 연습을 하듯이
많이 찍다 보면 잘 찍힌 사진 한 장쯤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생각은 많이 찍어 놓은 사진 중 좋은 것을 남기고 지우면 될 것 같았는데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도 쓸모가 있다더니 잘 찍히지 못한 사진도 쓸모가 있었다. 초점이 흐려 무얼 찍었는지 구분이 안 되는 사진도 '잘 못 찍은 사진의 예'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한자리에서 찍은 그만그만한 사진 중 어느 한 장을 남기는 건 내게 고문과 같은 일이었다.한 장 한장 우열을 가려 내는 일도 힘들지만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쓸모가 있어 보였다. 고심 끝에 내가 택한 방법은 저장 공간을 늘리는 일이었다.
컴맹 할머니가 512기가 휴대폰을 쓰고 있다 . 3년째 된 지금 절반쯤 용량을 소비하고 있는데 이년이 넘으면서 부터 휴대폰은 이리저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야 한다. 보조배터리까지 갖추고 다니는 일은 번거롭긴 하지만 견딜만은 하다. 문제는 사진을 많이 찍으면 휴대폰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컴맹에게는 아주 겁나는 일이다.
새 휴대폰을 장만하려니 휴대폰에 남아 있는 저장 공간이 아까울뿐더러 새 휴대폰에는 그만큼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불편 감수하고 오래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게 굳세게 마음을 먹어서인지 불편함보다는 저장 공간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비단이 좋다 한들 마지막 가는 길에는 삼베옷이 필요한 법이다.그때그때 쓰임이 다르다. 저장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내 사진들이 이리저리 발에 채는 길가에 흩어져 있는 돌멩이 같지만 언젠가 쓸모가 있게 될지도 모른다. 눈에 뜨이지 않던 작은 야생화 한 송이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날도 있고 행복의 파랑새도 집으로 돌아와야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간 쓰이게 될 내 휴대폰 속 사진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