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취미라고 큰소리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읽어야 할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요즈음이다. 욕심은 아직 살아 있어 서평이나 신간 서적 소개 글을 읽으면 대책 없이 서점으로 달려가곤 한다. 예전 같으면 서점 구석에 서서 두서너 시간 만에 웬만한 책 한 권 읽고 말았건만 요즘은 책의 에필로그나 목차 정도만 눈대중으로 대충 읽을 작정이라도 앉을자리를 먼저 찾게 된다.
코로나 이후 대형서점의 앉을자리는 많이 줄었다. 자리를 차지하려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자리 나기를 기다리다 마치 만원 전철에서 자리 차지하기에 안간힘을 쓰는 아줌마처럼 빨리 움직여야 한다. 천성이 이악스럽지 못한 나는 그런 일에 아둔하다. 오히려 주변에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면 스스로 양보하고 만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던 호시절은 지나갔다.
다행히 주변에 시설 좋은 도서관은 많이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건만 세상 제일 힘든 게 운동화 끈 매기라 하지 않는가? 도서관 외출을 마음먹으면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진다. 서울에서는 가까운 거리라 하더라도 30분 이상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오가는데 한 시간 이상,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낫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게 된다. 외출할 일이 있을 때 볼일 끝내고 나서 도서관에 가자는 쪽으로 기울고 마는데 대부분 목적이 있는 외출은 그 한 가지로도 벅차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기도 바쁘다.
주부들이 집에서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택근무를 하는 주부들은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이다. 손댈수록 많아지는 집안일을 보면서 일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눈이 나빠진 요즘에는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어야 하니 눈의 피로도를 무시할 수 없다. 오랜 시간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내 독서 습관도 한몫한다. 일단 손에 책을 들면 한 권을 다 읽어내야 속이 시원해진다. 읽다가 중단하면 일을 다 끝내지 못한 것처럼 속이 뒤숭숭해져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사람처럼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고 만다.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마음 놓고 책을 읽는데 이젠 체력과 시력이 뒤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하루 두 페이지라도 읽자고 작정해 보았지만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으니 매번 첫 페이지만 읽고 만다. 읽어야 할 책들은 쌓이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겐 블로그가 있다. 블로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 대부분 길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이니 지루하지 않고 눈으로 대강 훑어도 되는 내용들이라 피로를 느끼지도 않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읽었을 때처럼 충족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블로그 이야기를 꺼낸 건 ' 행복한 루치아 님'의 포스트 때문이다. 루치아 님은 하루 한편 수필을 올리고 있다. 하루 한 편이니 많이 읽으려고 욕심낼 수 없고 낭독으로 천천히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에 읽을 수 있다. 가끔 읽고 싶었던 글을 만나면 서너 번 거푸 읽기도 한다. 요즘 읽고 있는 글은 목성균 선생님 글이다. 그의 누비처네는 나도 가지고 있지만 책으로 읽다 보면 한꺼번에 서너 편 이상을 읽게 되는데 하루 한편씩 실어주니 음미하며 천천히 낭독을 하게 된다. 온전히 글을 읽은 충족감에 젖을 수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올라오는 글을 내가 제일 먼저 읽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김태길 선생님의 글이 올라올 때는 반가워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의 책을 한 권 사려 하던 참이었다. 아쉽게 세편 밖에는 올리지 않아 조금 서운했으나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자극되기는 했다. 조만간 서점에 가게 되면 김태길 수필집을 꼭 한 권 사려 한다. 책을 소장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이제야 깨닫는다. 미처 읽지 못한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만 가는데 소장하고 싶은 책들도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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