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은 소비자의 날이다.1979년 12월 3일 소비자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당시에는 소비자 보호의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이나 노인의 날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정되었다가 훗날 소비자의 날로 바뀌게 되었다. 소비자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적극적인 영향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생산과 소비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한 이루어져야 할 필수조건이다. 누구나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된다. 특정한 집단이나 사회 계층을 위한 날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날이 되는 셈인데 정작 소비자의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껏 소비자 단체에 속한 사람들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행위는 작거나 큰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민 모두에게서 이루어지는 보편적 행위이다.
소비자가 사회적 약자라면 국민 모두가 사회적 약자가 되어야 하건만 소비자 보호법 때문인지 요즘은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슬로건도 많이 볼 수 있다. 더 이상 소비자가 약자가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보통은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이 적극적인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악용되어 오히려 판매자나 생산자를 위협하는 문구로 쓰이기도 한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소비자인지 생산자나 판매자인지 모호해진다. 물론 아직 보호받지 못하는 소비 생활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 경우는 보험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소비생활의 정점에 이르렀을 젊은 시절에는 보험은 주변 아줌마들 영역이었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에게 친분을 이용하여 계약을 성사시키곤 했다. 보험 상품의 특성상 가능한 일이었다. 소비자가 필요를 느끼고는 있지만 바쁜 생활에서 일부러 가입하기엔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깨알 같은 약정을 일일이 읽어 볼 수는 없는데 친근한 주변 사람들이 "나만 믿어" 하는 말에 도장을 내어 주곤 했다. 적은 금액으로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지인들의 추천이 있을 때마다 하나 둘, 가입하다 보니 다달이 내야 하는 금액이 한도 초과에 이르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시련을 겪으며 제일 먼저 납입이 멈춘 것이 보험료였다. 당장 눈앞이 캄캄한데 미래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보험들은 실효되고 그동안 한두 푼 넣어두었던 보험료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다시는 보험을 들지 않을 테야'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요즘엔 보험을 진단해 주는 보험 영업형태가 생겼다. 기존 보험을 점검하여 보험료는 줄이고 보장과 보험 금을 늘려 주겠다는 말에 솔깃했다. 결국은 새 보험을 들게 하는 꼼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좋은 보험을 잘 설계해 주었다면 거치지 않아도 될 과정이다. 그동안 애써 부은 보험료를 포기하고 새 보험을 들어야 하는 가슴 쓰린 절차라는 걸 알아 버렸다. 늦게라도 알아 갈아타는 게 현명하다면 할 말은 없다. 날아간 내 보험료만 아까울 뿐이다.
일찍이 모든 보험이 실효되는 아픔을 겪고도 두서너 번 더 보험이 실효되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적은 금액으로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다달이 불입하던 보험료로 작은 적금이라도 들어 놓았다면 적립금이라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인데 보장 보험의 보험금은 그냥 물거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
보험회사는 대기업이고 소비자는 개인이다. 허리가 휘도록 일해 번 목숨 같은 내 돈이 물거품이 되어도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는 없다. 깨알같이 작은 약정을 읽지 않은 소비자 잘못이라 한다 . 보험이 서로를 돕는 이념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정작 희생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서민들의 경우가 많다. 확인하지 않고 보험설계자를 믿은 잘못이다. 결국 소비자의 잘못이다. 처음 가입할 때는 분명 왕이었는데 말이다.
목적지에 무사히 닿았다면 왕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 되었는데 간신히 잡았다고 생각한 널빤지를 빼앗긴 기분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라 한다. 좌초된 배에 탄 내 잘못이다. 과연 배가 좌초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비자의 날도 좋지만 소비자 보호의 날도 괜찮을 것 같다. 소비자가 왕이기도 한 세상이지만 아직도 보호받아야 할 소바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