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공격이었다. 늦장을 부리던 여름 더위를 하루아침에 쫓아 버리고 깊숙이 자리를 잡은 가을, 단풍마저도 길을 잃은 듯했다. 그대로 낙엽 되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섣부른 추측이 무색하게 올가을 단풍은 유난히 곱고 끝이 길다.
70 평생 올처럼 예쁜 단풍을 본 적이 없노라는 친구는 "이번 길이 금년 마지막 단풍길일지도 몰라'"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가을 산책을 채근한다. 올가을엔 그녀와 함께 단풍을 찾아다녔다. 탄천 길, 피천득 길, 양재천, 선정능, 석촌호수, 주변에 있는 산책로는 한두 번씩 눈도장을 찍었다. 볼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친구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났다. 혼자 하는 산책을 즐기는 편이건만 그녀의 환호에 단풍이 더 고와졌다. '함께하면 기쁨도 두 배'라는 말을 실감했다. 17세 소녀로 돌아가 같이 호들갑스러워졌다
그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양재천 , 서너 번 족히 다녀왔건만 갈 때마다 새로웠다. 하긴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 나날이 깊어가는 가을에 맞춰 단풍도 물들어가니 갈 때마다 어제의 단풍은 아니었다. 절정을 계기로 미련 없이 낙엽 되어 떨어졌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고와서 서럽다는 시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 고와도 서러운 법인데 떠나보내는 서러움마저 감당해야 한다 . 어쩌면 동병상련의 아픔일 수도 있겠다. 절정을 지난 시기임을 인정하지만 낙엽 되어 떨어지는 시기를 가늠할 수는 없으니 서운하거나 섭섭하다기보다는 당황스럽다.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건만 남은 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기도 하고 속절 없어지기도 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길에서 오늘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저 내 앞에 놓인 삶을 사랑해야 할 뿐 "사는 동안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주문처럼 되뇌어 본다. 기습공격인들 어떠랴 앉은자리가 내 자리인걸. 사막에 피는 꽃도 있고 하루살이에게도 삶은 있다. 지금 내 자리가 꽃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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