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수필가 협회 송년회가 있었다. 시상식을 겸하는 자리였으니 사람들은 축하 분위기와 맞물려 잔뜩 고조되어 있었다. 마침 주변 문인의 하객으로 방문한 테너 임웅균 님이 즉석에서 축하곡을 불러 주었다 ' 나의 사랑 목련화야 ' 깊고 굵은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자 실내는 잠시 멈춰 서는 듯했다. 노랫소리만 가득해졌다.
송년회였으니 연말 분위기를 띄우는 노래도 많을 텐데 그는 봄을 노래하는 목련화를 불렀다. 순식간에 실내에 봄이 가득 들어차는 듯했다. 봄의 설렘과 환희였다. 송년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한 계절을 맞는 희망을 볼 수 있었고 언 땅을 비집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목련화의 지혜를 배웠다.
12월에 흔히 듣는 상식적인 플레이 리스크 곡은 아니었지만 앞을 내다 보는 선곡이었다. 이제 신인상을 받는 새내기들은 잠시 긴장을 풀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젖을 수 있었다. 겨울 노래나 연말에 대한 노래를 듣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한 문장이 떠 올랐다 '똑같이 생긴 꽃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그중에 꽃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수필뿐이 아니라 생활의 멋, 예술의 경지는 그런 파격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되 전부를 흔드는 일탈이 아니라 되돌아올 수 있는 여유를 찾아서 사람들은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다.
나는 보수 성향이라는 정체성에 스스로를 묶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건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잠시의 일탈에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한 자의 변명 같은 것, 안위만을 탐할 뿐 모험의 경지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쳇바퀴만 굴리는 다람쥐 같은 형상은 아니었을까?
연말 신인상을 타는 자리에서 목련화처럼 피어오르는 자신을 상상해 본다. 겨울을 견디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이다. 딱딱한 내 껍질을 깨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겨울철 내 플레이리스트에 목련화 한곡 더하며 다가올 봄을 미리 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