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시월에 겨울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상달이라 불렀다.
햇곡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시기였다.
어머니는 먼저 붉은팥으로 시루떡을 만드셨다.
쌀가루에 팥을 켜켜이 얹은 떡이다.
정성스레 떡을 안치고 불 조절을 하며 시루떡이 익기를 기다렸다.
보통 붉은 팥 시루떡에는 호박고지나 무등 부재료를 섞었지만 상달 떡은 오롯이 쌀과 팥으로만 만들었다.
구수한 떡 냄새가 퍼지며 맛있게 떡이 익으면 어머니는 식기 전에 뜨거운 떡을 작게 잘라 집안 구석구석 뿌리셨다.
액막이라 했다.붉은팥이 영험하여 잡귀를 물리친다 하였다.
그 일ㄹ이 끝나고 집안 구석구석 한 접시씩 떡을 놓고 동네를 돌며 집집마다 떡을 나누고 난 뒤에야
우리는 떡을 먹을 수 있었다.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라 떡을 만드는 날은 잔칫날처럼 신이 났지만
우리는 누구도 먼저 떡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경건한 모습 때문이었다.
어린 맘에도 가족을 향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전해져 우리는 모두 의젓했다.
입맛을 다시며 이 모든 절차를 끝낸 후에야 상기된 얼굴로 떡 한 조각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떡의 조합은 요샛말로 단짠단짠이었다
찹쌀을 넣어 쫄깃한 식감도 일품이었다.
그 절묘한 맛의 조합은 반백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건 아마 어머니의 정성 때문일 것이다.
헤매다 상달에는 붉은팥 시루떡이 그리워진다.
"붉은팥 시루떡으로 해야 해" 시상식과 동인지 출판기념을 겸한 송년회 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시월상달이었다.마음이 따뜻해졌다.
제자들을 향한 선생님의 애틋한 기운은 어머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군사부일체' 라 하던 옛 말이 떠 올랐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선생님은 모든 제자를 아끼신다.
그럼에도 이번 시상식에 더 애정을 쏟으시는 듯했다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시상식 말미에 내 이름자도 끼어 있었다. 공연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많은 제자들 중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는 제자라서 더 마음이 쓰였던걸까?
선생님이 나를 위해 붉은팥 시루떡을 주문하신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상상도 해본다.
혼자 잔뜩 고무되었다가 부족한 제자들과 책을 꾸리며 애가 탔을 선생님 생각에 숙연해졌다.
선생님 앞에서는 왜 어린아이가 되는 걸까?
깊은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머니 같은 선생님의 심중을 헤아리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붉은팥 시루떡을 주문한 선생님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번 시월상달의 붉은팥 시루떡은 유난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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