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청구 영언에 실린 우탁 선생님(1262~1342)의 탄로 가는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시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조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늙는 건 반갑지 않다. 막대를 흔들고 가시덤불을 쥐어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 보고 싶다.
100세 시대가 되었으나 늙는 걸 멈춘 것이 아니라 노년기가 길어졌을 뿐이다. 65세 은퇴 이후의 삶만 길어졌다. 나는 이 시간을'사회의 고려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이 들면 일 할 수 없으니 당장 생계가 문제가 된다. 노후 자금이 비교적 넉넉히 준비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길어지는 기간은 부담스럽다. 한정된 자산을 쪼개고 나누어야 한다. 노후에 쓸 자산은 묶어 두는 게 아니라 혼자 굴러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럴듯하지만 관리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입 닫고 주머니만 열어 놓아야 하는 노년에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니 아껴 쓰는 수밖에는 없다. 열 지갑이 없으니 몸이라도 쓰고 싶지만 은퇴라는 철퇴 앞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 봉쇄된 듯하다. 폐휴지를 줍는 정도만 허락된다.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되고 있어 노후에 최저 생계비는 보장받을 수 있다지만 제약이 만만치 않다. 두 손을 놓아야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수입이 생기면 생계비 보장에서 자동 탈락이 된다. 일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최저 생계비로 버텨야 한다. 자존감이 상실된다. 노후 연장 기간이 반가울 리 없다.
다행이 백세시대가 정착되어 가며 젊은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은퇴시기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해 조절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당장 노후에 직면한 내게는 '남의 밭의 콩' 일뿐이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며 길어진 노후를 감당할 수만은 없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있어야 한다. 나는 노후의 경제적 안정을 포기하고 시간을 택했다. 길어진 노후를 풍족하게 보낼 수는 없어도 지루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간직해 온 꿈이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이다.
노후에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우선 그동안 쌓인 경험이 바탕이 된다. 우리가 듣는 자주 말이 "내가 지내온 세월은 소설 한 권으로 부족하다"는 말이다. 경험상 할 말이 많은데 입은 닫으라 하니 글을 쓰면 된다. 글은 쓰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한 줄 글도 쓰기 힘들지만 일단 한 문장을 쓰면 다른 문장이 달려 나온다. 돈도 들지 않고 혼자 할 수도 있다고 외롭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만날 수 있고 헤어진 어릴 적 친구도 소환할 수 있다.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잘 쓰려는 욕심만 버리면 된다.
2025년은 내게 글쓰기에 대한 당위성을 일깨워 준 한 해였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포기했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한 줄 글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글을 수다히 연습하여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보려 한다.
이건 노년의 여유이다. 젊은 시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남보다 앞서야 했던 시절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경지, 젊음의 치열함이 좋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눈부신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만 내면의 나에게 충실할 수 있는 지금의 나도 좋다.
막대로 가시덤불로 막아보고 싶던 늙음이었으나 이제는 다가오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지름길로 오는 백발도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