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다섯 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만 남았군요. "벌써? ""어느새?"를 외치는 건 사실은 '눈 가리고 아웅'하려는 심보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피해보고 싶은 심리이지요. 새 달력에 생일날을 표시하며 즐겁기만 한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는 짐짓 모른 척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다고 한 해가 길어지거나 가는 해를 잡을 수도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하니 새해맞이도 먼저 준비하는 게 좋겠지요? 사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준비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도 어느새 예약 문화에 익숙해져 웬만한 일은 예약이 필수더라고요. 인기 있는 일출 명소는 선점하지 않으면 누리기 힘들어졌습니다. 웃돈 찬스가 있기는 하겠지요? 그런 틈새를 노려 돈을 버는 약삭빠른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 누리고 싶은 것을 손쉽게 이루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소시민인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새해의 첫날을 편법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새벽, 아무 손길이 닿지 않는 시간에 정화수를 떠 놓는 어머니들의 정성만큼은 아니더라도새해 첫 출발만큼은 내 손으로 맞이해 보려 합니다. 이제는 젊은 시절처럼 특별한 기회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니 기쁘기만 한 일도 슬프기만 한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하루하루는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지해 줍니다. 오늘 땀 흘리면 내일은 쉴 수 있고 쉬다 보면 달리고 싶어집니다. 때론 늪에 빠져 허우적 대기도 하지만 빠져나올 때의 희열은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나만의 경험이 됩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니 누구도 같은 경험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나만의 인생이지요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각자 자기 인생이 있는 법입니다. 일회성이기도 하지요. 단 한 번뿐인 내 인생, 더 이상 남과 비교하느라,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앞에 놓인 내 인생에 충실해 보고 싶습니다. 남의 집에 금은보화가 내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내게는 작은 베란다 화분에 난 새싹이 더 소중합니다.
일출 명소를 찾아다니던 젊은 날의 치열함이 부럽기는 합니다. 세상 모두를 가지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지요 .
그 시절을 지났기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리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지만 살아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나 봅니다.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것 같아 세모를 부정하고 싶지만 살아 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겁니다 . 파랑새를 찾으러 집을 떠났지만 파랑새는 집에 있더라는 말이 있지요? 이번에는 일출 명소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새벽 정화수를 더 놓던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보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다섯 손가락 안의 날들이 더 소중해집니다. 2026년에는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