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가기를 좋아한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심심할 때 서점을 찾지만 축하할 만한 일이 생겨 즐거울 때도 곧잘 가게 된다. 특히 연말연시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자칫 들뜨기 쉬운 감정을 가라앉히기 좋고 사치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서점이 결코 사치스러운 공간이 될 리 없건만 서점에서는 부자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는 진부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 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면 서점보다 도서관을 자주 찾아야 할 일이지만 눈이 침침해진 이후로 도서관은 작심하고 찾아가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도 침침해진 눈으로 얼마쯤 몸살과 같은 증상을 견뎌야 하니 도서관은 이제 내게 여우의 신 포도와 다름이 없다.
서점은 도서관보다는 조금 자유스럽다. 언젠가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좋다. 책을 사는 건 가능성을 사는 것과 같다. 책값도 많아 올랐지만 가능성을 사는 사치라면 부려볼 만하지 않겠는가? 가성비 좋은 호사가 된다.
지난해에는 서점을 찾는 횟수가 현저히 줄기는 했다. 책을 읽을 가능성이 줄어 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내 책장에는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 더 많이 쌓였다. 서점을 찾는 즐거움의 양상이 조금 달라진 것뿐이다. 예전처럼 서점을 찾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책을 집에 앉아서 받아 볼 수도 있고 등단과 더불어 동료 작가들의 책을 받아 볼 기회도 많아졌다. 작가들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동료들의 책을 받는 건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는 또 다른 호사가 된다. 글 한편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땀과 노고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막연히 책을 읽는 즐거움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가능성이 아니라 부담이 되기도 한다. 사치가 아니라 숙제가 된다.
'기왕 하는 숙제라면 즐겁게 하자' 새해 벽두에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다. 비평문학을 공부하면 동료들의 책을 요령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으니 기특하지만 편법 같기도 했다. 공부에 왕도가 없음을 알고 있더라도 지름길을 찾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즉각 서점으로 달려가 초보가 읽어야 하는 비평문학 책 중 하나를 고르고 선생님께 비평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중을 슬쩍 비춰 보았다. 편법을 쓰려는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비평 문학 공부 좋지요, 해두면 글쓰기에도 움이 될 겁니다 의외로 흔쾌한 대답을 하며 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다. 선생님이 요즘 출간한 비평 문학책이다, 한 권은 비평문학의 길잡이가 될 전반적인 내용이고 다른 한 권은 여러 작가들이 선생님 작품을 비평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한 작가를 두고 여러 사람의 견해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이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올해 내 책 사치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사치를 호사로 만드는 일은 내 몫이다. 가능성만 열어 두지 말고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제대로 누려 볼 일이다. 이런 사치라면 부려 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