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책읽을 가능성

by 우선열

책을 좋아한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책 읽을 가능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새해 벽두에 '책 읽을 가능성'이라는 말을 발견한 나는 지금 사뭇 고무적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좋은 변명인 것만 같다.

문예월간지를 비롯하여 새로 책을 낸 문우들의 책까지, 등단 이후 책꽂이에 책이 사정없이 늘고 있다. 흐뭇하지만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다. 한 줄 한 줄 정성 들여 써 내려갔을 문우들을 생각하면 미처 읽지 못한 책 들이라도 차마 치울 수가 없다. '곧 읽을 거야' 큰소리치며 책꽂이에 꽂지도 못하고 손이 쉽게 닿는 책상 위에 놓아둔 책들이 산더미를 이루지만 침침해진 눈은 읽으려는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신문 신간 소개나 서평 글들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사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쭙잖은 글을 쓰면서도 욕심은 왜 이리 많은지 시, 시조, 소설, 평론, 온갖 종류의 글쓰기 비법 책들을 사들인다. '이건 병이야'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던 참에 '책 읽을 가능성을 사랑한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책 더미들이 부담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보인다.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나의 책 사랑은 결핍의 시대를 살아온 산물일 지도 모르겠다. 전후 물자가 귀하던 시대, 우리는 교과서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선배의 책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헌 책에 지난 달력으로 겉장을 입히고 정성스레 이름을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쩌다 새 책을 갖게 되면 온 세상이 내 것인 듯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귀한 것은 대접받기 마련이니 책은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책뿐 아니라 물자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변소에는 화장지 대신 신문지나 철 지난 주간지들을 16절지로 잘라 걸어 두곤 했었다. 용도는 따로 있었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종이에 쓰여있는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볼일이 끝나도 그 글을 다 읽을 때까지 일어서지 못했다. 혹독한 냄새를 견뎌야 했다. 인쇄물이 그만큼 귀하던 시절이다.

그때부터 책 읽기에 대한 갈증이 시작된 것 같다. 책을 보면 무조건 사들이는 버릇도 함께 했다. 쌓아놓은 책을 읽지 못하는 죄책감도 따라왔는데 그걸 가능성이라 부르기로 했다.' 책 읽을 가능성 ', 나는 그 가능성을 사랑한다. 주변에 널브러진 책들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다. 책 읽을 가능성을 쌓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