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면허증, 겨울 산책을 위하여

by 우선열

나이 70은 운전을 하지 않는다. 자의 반 타의 반이다. 강제는 아니지만 정부에서도 노인들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권유하고 있다. 굳이 반납을 하지 않는 건 또래 보다 건강하다는 자신감과 혹시 모를 변화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내게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 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었으니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 들수록 병원 가까운 도심에 살아야 한다니 그 단서는 날이 갈수록 견고해질 것이다. 결국 이루지 못할 소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중교통이 미흡한 시골에 가려면 운전면허는 필수라며 고집을 부려 보는 것이다.


혹시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지는 못할 것 같다. 잔뜩 긴장해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운행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아직은 건강한 두 다리가 있다. 나는 요즘 드라이브 대신 산책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드라이브처럼 주마간산식 스치고 지나가는 감탄이 아니라 풍경 속에 들어가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밖에서 군침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경지 같다고 할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볼 때마다 새로워진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나목이 대견하다가 문득 처연해지기기도 하다.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은 여느 면류관 부럽지 않은 찬란함이지만 맨몸으로 견디는 인고의 시간에 마음이 아파진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처지가 안타깝다


입춘이 지난 이때쯤, 나뭇가지에는 작은 변화가 인다. 드라이브로는 감히 눈치챌 수 없는 아주 작은 변화, 천천히 걸으며 빈 나무 가지를 조심스레 살필 때 비로소 곁을 내주는 물오르는 소리, 바짝 마른 몸매에 물을 길어 올리는 뿌리들의 힘찬 함성. 산책을 즐기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나뭇가지에 도는 생기. 겨울 산책의 묘미이다.


와중에도 빈 가지에 둥지를 튼 새집이 있고 마지막까지 한두 개 남은 까치밥을 본다. 겨울은 나눔의 계절이다. 나눔이 소중한 것은 풍족한 것을 나누는 것에 있지 않다. 부족한 대로 서로에게 온기를 줄 수 있어야 나눔이다. 봄이 오는 건 이렇게 기특한 나눔 덕분이다 봄의 연하고 예쁜 새싹들은 겨울 나목들이 나누어 준 겨울 햇살 덕분이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어도 겨울 산책을 포기할 수 없다. 운전면허를 포기하지 않는 건 더 오래 산책을 즐기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도심의 인공 숲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나누는 자연상태를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전면허증이라는 버팀목은 자연을 향한 나의 노스탤지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