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무릎엔 늘 공 같은 실뭉치가 놓여 있었다
가을 겨울엔 굵고 알록달록한 저마다 예쁜 색을 자랑하는 털실, 봄여름에는 얇은 하얀색 레이스실 뭉치들이 자리를 차지 했다.
털실에는 큰 대바늘을 레이스 실에는 작은 철 바늘을 쓰셨다.
실은 엄마의 검지에 걸려 술술 풀려나갔다.
마치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규칙적이고 정확했다.
연속극을 보거나 우리들의 숙제를 봐 주실 때도 눈은 우리를 향하면서 손은 한번도 쉬지 않았다.
털실 뭉치는 우리의 벙어리장갑이 되기도 하고 목도리 조끼, 바지와 셔츠, 겉옷이 되기도 했다.
새 옷은 늘 헐렁한 큰 옷이었지만 어머니의 뜨개질 옷은 몸에 잘 맞았다
"금방 클 테니까" 가끔 우리를 불러 뜨개질 하던 옷의 크기를 맞춰 보시며 하던 말씀이다.
털실 옷은 곧 작아졌지만 어머님은 흐뭇해하셨다
작아진 헝겊 옷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눈 빛이 아니었다.
"그새 컸구나" 하시며 털 옷을 풀었다
몇 날을 정성껏 뜨개질을 하여 만든 옷들은 매듭을 풀면 기다렸다는 듯 술술 풀려나갔다
어머니는 우리를 불러 어깨너비만큼 손을 벌리게 히고 손목에 털실을 감으셨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싫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자신의 손목에 실이 감기기를 자청했다
라면 가락처럼 꼬불거리는 실들을 적당한 크기로 묶어 실타래를 만드시곤 어머니는 또 다른 마술을 부리셨다
커다란 주전자에 물이 끓고 김이 퍼져 나가면 털실들은 곧 새 실처럼 곧아지고 몽글몽글해졌다.
어머니는 새 털실을 공처럼 둥글게 뭉치셨다.
털실 공이 된다.
털실 공이 다시 무엇이 될지 우리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었다
나는 어머니의 뜨개 옷을 좋아했다.
둘째 딸이라는 위치가 많이 한몫 한 듯하다
대부분 언니 옷을 물려 입어야 했지만 털실 옷만큼은 새것이었다.
담당실이 처음 나왔을 때 떠주신 자주색 겉옷은 가볍고 따스하고 예뻤다
자주색 몸통에 감색 깃을 단 코트를 겨우내 자랑스럽게 입었고 언니의 시샘도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입었던 연두색 재킷 깃에는 빨강 노랑 무늬를 넣어주시기도 했다.
입학식의 긴장마저 날려 버릴 만큼 신이 나서 학교를 가던 기억이 있다.
나는 둘째 딸 콤플렉스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불러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만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좋다
조금 모자란듯하고 때로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착하게 살고 싶다.
첫 딸과 첫 아들 틈에서 자칫 소외될만한 둘째 딸이었지만 어머니는 정성으로 나를 보살펴 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더 착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털옷을 기억하는 한 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그 따뜻함이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