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 산책길에서

by 우선열


산책을 나섰다. 아직 동네 어귀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삐리리 리리····' 이상한 여운이 남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다. 혹시 비비새? 내 아는 상식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새 이름 중의 하나이다 "'비비' 라기엔 악센트가 강하다. 주변을 살폈지만 학교 담장 뒤, 지나는 이 없는 외진 길이다. 두리번거리는 내 시선을 붙잡은 건 작은 새 한 마리, 전깃줄이 마구 얽힌 전봇대 꼭대기에 앉았다

반가움은 잠시, 늘어진 전깃줄이 내 눈에 밟히는데 새도 제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시선이 멀다.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날개를 가졌지만 저리 작은 몸으로는 감당해 내기 어려운 거리일 수도 있겠다. 새소리가 앰뷸런스 음향처럼 간절하게 들렸던 이유였을까?

날개는 없지만 튼튼한 두 다리가 있으니 이번 산책은 좀 더 멀리 가봐야겠다. 작은 새의 시선이 닿던 그 먼 곳, 간절한 울음으로 닿던 곳. 눈먼 이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의 동행을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할지 모른다.

날개를 부러워할 일 만은 아니다.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멀리 볼 수는 없지만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에 감사할 일이다. 새도 울음소리가 아니라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노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새의 시선을 따라 걷는 산책길,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혼자 걷던 늘 가던 길에서 벗어났다.성남방향, 양재천 방향,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아니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 보기로 했다. 다리 위에서 보는 탄천은 또 다른 모습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탄천, 새의 시선이 이러할까. 멀리 볼 수 있어 그리움이 클 수도 있겠다.

건너편 잠실방향 탄천은 우리 집 쪽 산책길과 조금 다르다.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할까?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고 갓 심은 듯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나무들의 이름과 특징을 써놓은 팻말도 가끔 보인다. 반갑다.

늘 지나다니면서도 이름도 모를 나무였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이런 작은 일들이 자연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송파구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

겨울 산책의 묘미는 나목에 있다. 아무런 치장 없이 맨몸으로 선 모습이지만 가지와 줄기가 모두 다르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하나하나 독특한 모양과 색과 뻗는 방향이 있다. 새집을 품은 나무도 있고 가끔은 까치밥을 남긴 인심 좋은 나무도 있다.

나무들 곁으로 유유히 흐르는 탄천 . 햇살과 즐기는 유희는 윤슬로 남는다. 연회장에서 춤을 추는 춤꾼의 사위가 이토록 아름다울까. 온전히 그 모습은 누리는 건 나무들과 주변에 갈대숲이다. 갈대들은 좀 더 가까이에서 강물의 흐름을 즐긴다. 바람이 불면 그들의 흥을 온몸으로 나타낸다. 갈대가 있어 탄천변은 더 풍요롭다.

송파 둘레길이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이 길을 다듬는 이의 손길이 느껴진다. 나무에 이름표를 만들던 고운 손길이리라. 자연은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더 아름다워진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불든다.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발걸음을 재촉 하는데 발 밑에서 포르르 날아오르는 작은 새, 조금 더 놀고 싶은가 보다. 높이 날기보다는 낮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고 다닌다. 꼬리가 붉은빛이다.

'이름 모를 새'라는 게 부끄러워진다.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새를 지나니 이번엔 고라니, 고라니는 구면이다. 지난번 산택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노루다"라고 소리를 질렀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이번엔 고라니 쌍이다. 두 마리 고라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른 풀을 뜯고 있다가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구면인 걸 알아본 것일까? "반갑다 고라니" 하고 보니 고라니 주변에 마른 풀 사이로 푸르게 돋아나는 싹들이 보인다. 고라니에겐 배고픈 계절이겠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리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 보니 작은 나뭇가지에 움틀 준비를 하는 싹눈이 보인다. 나무는 열심히 뿌리에서 물을 길어 올리며 움틀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오는 봄을 맞이하려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오는 봄을 맞으려'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 입안에서 흥얼거리는 동요 한자락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산책길 초입에서 만난 작은 새의 노랫소리로 멀리 볼 수 있었던 탄천 산책길이다. 새와 고라니가 함께한 산책길, 봄이 오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