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에 태어난 내 블로그

by 우선열

오늘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내 블로그 '오늘은 처음'의 11번째 생일이다. 어느나라 명절인지 국적도 몰라 데면데면하던 밸런타인데이가 소중한 날이 되었다. 길거리까지 점령한 상점 앞 초콜릿 더미들이 더 이상 못마땅하지 않다. 내 블로그가 덩달아 달콤해지는 듯하다. 오늘은 좋아하는 초콜릿 산더미 쌓아놓고 블로그 11주년 자축 파티라도 벌려 볼까

어느새 11년 차가 된 내 블로그가 기특하기만 하다. 11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이다. 올해는 내 블로그에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 해본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 나는 60대 초반이었다. 문자 문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고집을 피우는 컴맹이었다. 그 나이에 여자들이 특별히 사화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일이 많지도 않았다. 가끔 불편을 느끼기는 했지만 무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무시하고 말았다.

늦둥이 아들이 군 입대를 하면서 시련이 시작되었다. 옛날처럼 편지로 소통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아들의 소식을 빨리 알려면 군밴드에 가입해야만 했다. 컴퓨터로 나를 인증하는 일부터 힘들었다. 깔고 깔고 또 깔아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당장 필요한 한두 가지 기능은 익혔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곧 잊어버렸다. 아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자존감이 무너졌다. 고집스레 손 편지를 썼지만 아들은 편지가 한꺼번에 도착하니 편지에 일련번호를 붙여달라는 요구를 했다. 하루에 한 통씩 100통의 편지를 쓰다가 컴퓨터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였다.

일단은 컴퓨터와 친해지는 일이 먼저였다. 자주 사용할 빌미를 마련해야 했다. '컴퓨터 왕초보', '블로그 이렇게 하면 된다'. 두 권의 책을 사고 독학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초보에요 첫 글을 올립니다' 가 블로그에 올린 첫 글이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 글을 본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 주었다. 뿐만아니라 컴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자기만의 노하우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신이 났다. 컴퓨터를 배우려는 애초에 목적은 간 데 없어지고 이웃과의 교류에 빠져들었다. 그 덧글들이 내 블로그를 키워주었다.

가끔 글이 재미있다는 이웃들의 칭찬이 올라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은가. 초보 블로거도 춤추고 싶었다. 더 자주 신변잡기 들을 쓰다가 4년 전부터 매일 From 블로그 씨에 답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이 천개 이상이 되었다. 일상 블로거를 핑계로 잡탕이 되어가던 내 블로그가 글 쓰는 블로그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에 등단도 하고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아직도 블로그 지수라던가 로직이라던가 하는 블로그 성장을 위한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은 인플루언서가 되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내 블로그는 닉네임처럼 아직 애송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년 차에 애송이를 벗어나지 못한 부족한 블로거지만 나는 글 쓰는 블로거로 정체성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직은 형편없는 컴퓨터 실력이지만 컴맹은 면했다고 큰소리도 쳐본다.

블로그 씨 질문에 대한 답글만도 천 개가 넘으니 나는 이미 글 부자이다. 올해는 'From 블로그 씨' 글만 모아 책을 내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이만하면 11번째 블로그 생일 자축할 만하지 않은가.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처럼 달콤한 하루를 보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