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으로 /호 오오 /유리창을 흐려 놓고/썼다가 지우고 / 또 써 보는 글자들 /봄/꽃 / 나비/봄 이 되면 나는 나는 /새로 사학년/ 내 마음엔 벌써 봄이 와 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동시이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토씨 하나 건너뛰지 않는다.
나이 드는 게 비극적인 이유는 몸은 늙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 데 있다더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열 살 무렵과 다를 바 없다. 간절함은 한 수 위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엔 마음만 앞서갔지만 나이 드니 몸이 먼저 반응한다. 겨울에 움츠러들던 몸에 활기가 솟는 듯하다. 게으른 고양이처럼 햇살이 그리워진다. 지팡이 내던지고 섬진강 매화보러 가던 시인의 심정이 된다.
"봄이 오면 환장하겠어요,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요" 유명 여배우가 70세 무렵 어느 토크 쇼에서 하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 여배우의 감성은 특별한가 보다' 했는데 그 나이가 되니 봄소식에 귀가 쫑긋해진다. 선정릉 복수초를 찾아 나서고 봉은사 홍매화를 기어이 보고야 만다.
나이 들면 아이와 같아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니 하고 싶은 일이 보이고 어린 시절처럼 호기심이 되살아 난다. 무지개를 쫓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내 안에 무지개를 찾아 나선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의 열정도 그립기는 하다. 해야만 하는 일은 나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절의 내가 있어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부득이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나 자신을 잊는 일이라 해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고 나면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그리워지는 법이다.
그 과정을 무사히 건너온 나를 축복한다. 이렇게 마음 설레는 삼월을 얼마나 더 맞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백세 시대가 축복이 되려면 건강해야 하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자신을 내가 돌볼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세월을 보낼 수도 있고 그런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다는 것뿐. 다시 찾은 삼월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2026년 3월 3일 생애 처음 맞는 오늘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그 하루를 시작한다. 내 마음엔 벌써 봄이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