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작곡거 구스타프 말러의 말이다.
말러는 19세기 낭만주의의 황혼기와 20세기 현대음악의 여명기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경계인으로 감당해야 했던 그의 삶의 무게가 이 한마디에 녹아든다.
작곡가로써 그는 당대에 이해받지 못하는 질곡의 삶을 견디고 사후 50년이 되어서야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피엔딩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지만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그 비극의 주인공으로 나는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를 주목한다
예카테리나가 살았던 18세기는 계몽시대였다
하지만 그녀의 러시아는 여전히 중세적인 관습과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숨기지 않고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인 듯했지만 그녀에게는 국가 근대화라는 명제가 있었다. 야망이 앞섰던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녀의 살아 생전에 러시아는 평온한 듯했다.
유약한 황제를 내치고 그녀가 잡은 권력으로 평화를 누려 온 듯했으나 그녀의 통치가 끝난 러시아는 행복하지 못했다.
부를 누리던 일부 귀족들에 비해 서민들은 노예의 삶을 짊어져야 했다.
노새가 이끌던 배를 끄는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레핀은'볼가강의 배끌기'라는 그림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에도 변화하는 시대상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종종 패러디 되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그런 시대의 변곡점에 서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 지금 AI 시대를 받아 들여야 한다.
현재는 힘들어도 언젠가 돌아올 나의 시대를 기다려야 할지
현재에 충실하여 불확실한 마래를 감당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말러와 예카테리나는 서로 방법은 달랐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다
결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
나는 지금 말러의 교향곡 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눈앞에 레핀의 '볼가'강의 배끌기'라는 작품이 어른거린다
내 성향은 예카테리나 황제보다는 말러에 가까운 것 같지만
내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글쓰기 연습생에 불과하다.
남들에게 위태해 보이는 걸음마일 수 있겠다
다만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 보겠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