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차를 마시는 시간

by 우선열

때는 봄/ 시간은 아침/이렇게 시작되는 시가 있다. 로보트 브라우닝의 '봄의 아침'이다.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도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날은 봄은 아니었다.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으니 가을 초입이 아닌가 한다. 새벽에 잠이 깨었다. 조금 추운 듯했지만 청정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신이 맑아졌다. 문득 어머님의 정화수가 떠 올랐다.

어머님의 하루는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어느 하루, 나도 일찍 눈이 떠진 날이 있었다.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었지만 어머니를 부를 수 없었다. 정화수를 떠 올리는 어머님의 경건한 모습 때문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간절함과 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 경건해졌다.

따스한 차를 한잔 만들어 책상 앞에 앉으니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날부터 내 새벽은 시작되었다. 다섯 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알람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 새벽은 밤의 정적과 다르다. 하루분의 먼지가 내려앉은 밤은 온갖 불편한 심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기 질투 권태 다하지 못한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불편한 심기를 다스려야 한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의 고요에는 아무런 방해가 없다. 하루분의 시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새하얀 백지와 같은 시간이다. 백지에 이런저런 글들을 쓰며 나를 만난다. 말하고 싶었던 순간, 말하지 못했던 일,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올라 내 속에 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차곡차곡 글로 쌓인다.

그 시간의 차 한 잔은 어머님의 정화수 같다. 정성과 진심, 절절한 기원이 들어 있다. 어머님의 기원처럼 한 점 사심이 없다. 펼쳐질 하루에 감사한다.

새벽, 차를 만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도다. 브라우닝 시를 패러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