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에 오는 봄

by 우선열

''산천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없네'라는 시구가 있다. 탄천 나들이 11년 차, 탄천은 여전한데 내 눈은 달라졌나 보다. 오늘은 어제 보던 탄천이 아니었다. 하염없이 봄을 기다리던 벌거 벗은 나목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윤슬처럼 눈부신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은백 양 나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 교목은 은백양 나무였다. 전후 교육열이 가장 높았던 시절, 학교는 교실이 부족해 2부제 수업을 할 만큼 학생 수가 많았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은백양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교정에서

" 이천에 우리 동무 사직에 모여로 시작되던 교가가 삼천에 우리 동무로 바뀐다"라고 발표하시던 교장선생님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 있다. 나를 '글 잘 쓰는 아이'라고 명명해 주신 바로 그 교장선생님이시다. '삼천에 우리 동무'를 대표하는 글 잘 쓰는 아이가 나였다.

그 날 조회가 끝난 후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대표하는 몇몇 아이들을 트럭에 태우고 카퍼레이드를 해주셨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동네 길을 한 바퀴 도는 정도였지만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나는 잘 쓰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졸업할 때까지 도내 백일장에서 수상을 휩쓸며 교장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학생이었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잠깐 뵌 그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글 잘 쓰는 아이로 기억하고 계셨지만 정작 나는 사춘기와 입시지옥을 지나며 글쓰기와는 멀어져 있었다. 다만 마음속에 자긍심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 써서 그렇지 쓰기만 하면 사람들이 놀랄 멋진 글을 써낼 수 있어'근거 없는 자만감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깨지지 않았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이 넉넉해지면 마음 놓고 글을 쓸 시간이 만들어질 거야'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열 살 어린아이가 마음속에 살고 있었다

늘 다니던 산책길에서도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데나는 열 살 아이만 고집하고 있었나 보다.봄이 오는 길목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꽃만 피는 건 아니었다. 보지 못했을 뿐 나뭇가지는 더 일찍부터 물을 올리며 봄을 준비했다. 이제 눈에 띄었을 뿐이다.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덕지덕지 붙은 껍질도 벗어야 했다. 스스로 껍질을 벗는 아픔을 이제야 본다.

열 살 아이가 보던 반짝이는 나뭇잎이 아니다.오늘 내가 본 은백양 나무는 힘차게 물을 길어 올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가지와 스스로 껍질을 벗는 아픔을 견디며 나뭇가지에 물을 올려주는 나무 기둥이다 . 나는 이제까지와 다른 새봄을 맞이하고 있다.

꽃과 나뭇잎처럼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빙산의 밑부분이 되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아도 물밑에 얼음은 존재한다.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새싹과 꽃을 길러내는 건 나무 기둥이다. 열 살 아이로 살던 시절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껍질을 벗어야 가능한 일이다. 글 잘 쓰는 아이를 내려놓는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언젠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날 수 있도록. 반짝이는 은백양 나무는 여전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 번 봄 나는 탄천에서 새로운 은백양나무를 발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