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노크

by 우선열



누군가 벨을 누르고 도망친 것만 같다. 문을 열면 장난기 가득한 아이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호들갑스러운 웃음 웃음소리가 멀어질 것만 같아 시선은 자꾸 창문을 향한다. 게으른 고양이는 파수병이라도 되는 양 일찌감치 창문 앞에 자리를 잡고 졸고 있다. 척후병 봄바람이 창을 흔들고 따스한 봄 햇살이 문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두터운 외투 자락을 열게 하는 건 힘이 센 겨울바람이 아니라 연약한 봄 햇살이라 하지 않던가? 창밖의 봄을 외면할 전의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대책 없이 집을 나섰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잠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다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다시 발걸음이 급해진다. 한동안 발걸음이 뜸했던 석촌호수를 향한다.

벚꽃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먼저 반긴다. 반기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는 봄은 더 우쭐하겠지, 이 곳의 봄은 유난히 화사하다. 수호신처럼 의연하게 서있는 롯데 타워의 모습에 안도한다. 모처럼 찾은 고향마을 어귀에서 정자나무를 만난 듯하다. 앙다문 벚꽃 봉우리도 맺혔던 마음이 풀렸는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다.

두꺼운 옷을 벗어 던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곁에 거위 무리도 여유작작 느리게 움직인다. 겨우내 차가운 물을 견뎌낸 자신들이 스스로도 대견한 가보다. 청둥오리가 반짝이는 윤슬을 즐기고 있다. 고운 건 즈들끼리 미리 내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심인지 심술인지 싫지 않다.

이 봄에 고운 것이 어찌 저들뿐이랴, 초록색 은하수가 흐르는 듯 영산홍 나무줄기엔 새싹이 움트고 있다. 좀 더 성미 급한 나뭇가지는 초록색 알전구가 켜진 듯하다. 최상급은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가 연두색 형광색빛으로 자체 발광 중이다. 잎보다 먼저 핀 개나리 진달래는 이미 안주인이다. 독보적인 화사함. 개나리 진달래가 없는 봄은 없다. 우리나라의 봄은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어야 한다.

물 위에 오리가 있다면 하늘엔 새가 있다. 유난히 깃털이 고운 비둘기와 오랜만에 눈에 띈 지빠귀, 석촌호수의 풍광이 유럽까지 소문 났나 보다. '천천히 놀다 가렴' 봄볕을 닮아 너그러워진 마음이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어 석촌 호수의 봄은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