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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Jan 21. 2019

우성씨, ‘후진 몸’이라는 말 다신 안 했으면 좋겠어요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가볍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을 종일 요가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약속이었다. 주말 중 하루는 오로지 요가였다. 토요일 오전 9시까지 요가원에 가려면 금요일 밤도 포기해야 했다. 약속을 잡는 마음이 점점 보수적으로 변했다. 술을 적극적으로 줄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던 자리에서도 술은 못 마셨다. 토요일 교육을 마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노곤해졌다. 집에 가면 에누리 없이 쉬어야 했다. 교육의 일정과 농도는 고루 빡빡했다. 그대로 지쳐 잠들 것 같았던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지치는 마음이 혹시 요가 때문이니?”


아니었다. 요가의 비중이 늘어난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매일 수련만 하고 싶었다. 삶의 더 큰 부분을 요가로 채우고 싶었다. 몸은 하루하루 정확하게 집중한만큼 변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마음까지 다 맑아져 있었다. 이렇게 요가와 요가를 둘러싼 것들로 내 전부를 채울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이 될 것 같았다. 강하고 유연하게, 담백하고 꾸준하게 꼭 필요한 것들로만 주변을 채우면서 천천히 걷는 삶.


나를 지치게 하는 힘은 늘 요가원 밖에 있었다. 혹은 내 안에 갇혀 있었다. 문득 자제하지 못해서 취해버렸던 밤, 스케줄 조율에 실패해 새벽까지 이어졌던 마감 같은 것들. 물론 객관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동료 기자들은 섭외, 취재, 마감에 외부활동까지 이어가면서 주말 하루를 요가에 투자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주말만 투자하는 게 아니었다. 지도자 과정을 이어가는 동안은 거의 매일 수련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루에 두 타임씩 수련하는 날도 있었다. 회사에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선배, 저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려고 해요. 토요일은 종일 요가원에 있어야 해요. 점심시간에는 아마 자리를 비울 거예요. 혹시 정말 듣고 싶은 수업이 있는데 업무 시간 중이라면 미리 허락을 받을게요. 당연히 일이 우선. 마감이나 업무에는 차질 없도록 할게요. 어떠세요? 괜찮을까요?”


그렇게 약 4개월이었다. 매주 토요일, 나는 좀 다른 세계에 있었다. 요가 철학과 이론, 해부학과 교수법을 배웠다. 동기는 10명 남짓이었다. 나는 취미로서의 요가를 천천히 벗어나려는 걸까? 이대로 점점 깊어지면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과연 해낼 수나 있을까? 두려울 일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없지 않았다.


어렸을 땐 뭐든 배웠다. 피아노와 검도, 유도와 수영을 배웠다. 겨울엔 스키와 스케이트를 틈틈이 배웠다. 배운다는 자각도 없이 익혔다. 몸과 마음이 두루 유연했으니까, 원하는 대로 숙련할 수 있는 시기였다.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몸도 마음도 굳어있었다. 정해진 기간 동안 목표한 바를 성취해야 하는 지도자 과정의 양식 자체가 낯설었다. 내가 수련하는 요가원은 국제 요가 협회(Yoga Alliance)에 가입돼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께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국제 요가 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내가 결심한 건 200시간 공인 과정이었다. 배우는 시간을 무사히 보내고 나면 엄격한 필기와 실기 시험이 각각 기다리고 있었다. 전 기수에 같은 과정을 수료한 선생님은 필기시험은 한 번 이상의 재시험, 실기 시험은 최소 두 번 이상의 재시험이 보통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수련은 평화였지만 지도자 과정은 도전이었다. 매주 토요일의 긴장이 만만치 않았다.


철학 수업에선 그날의 주제에 대해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썼다. 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수준이어야 했다. 주제에 대해 ‘그럴듯해 보이게’ 완성해 낸 에세이는 통과할 수 없었다. 다시 써야 했다. 얼마나 깊이 숙고하고 썼는지는 읽으면 알 수 있는 거니까,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의 입장에서도 긴장을 늦출 틈이 없었다. 예쁘고 잘 읽히는 문장을 쓰려는 게 아니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문장을 쓰려고 완성한 후에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매시간 편지 같았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지금을 이해하는 시간, 그 결과를 선생님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철학 시간의 대화도 기본적으로 좀 열려 있어야 했다. 전 주에 썼던 에세이에 대해 다음 주에 얘기할 때, 질문이 있을 때,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할 때도 흔들림 없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나를 꺼내 놓아야 한다는 것. 과장이나 꾸밈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솔직하지 않은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서먹함과 솔직함 사이, 예의와 살가움 사이에서 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지도자 과정 수련의 일부였다. 선생님 앞에선 다 들통날 것 같아서, 문장 하나 말 한마디가 정수이길 바랐다. 나 자신에 대해 정갈하게 가다듬는 시간이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할 때마다, 늘 진심이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묘하게 경직된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주목받으려고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물러서는 기질도 아니었다. 기왕 나서야 한다면 유쾌하고 싶은 쪽. 수도 없이 마주했던 인터뷰이, 거대한 강당에서의 콘퍼런스에서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치부를 들킨 것 같았다. 그나마 알량했던 사회적 기술, 꽤 효과적으로 버텨 왔던 방어기제가 다 무너진 것 같기도 했다. 200시간 지도자 과정의 초반이었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에 관련된 아주 평이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날 심정을 정확하게 기억해요. 생전 처음 하는 자세, 한 번도 안 움직였던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던 말은 딱 하나였어요. ‘아, 이 후진 몸을 어떡하지?”


이때, 모두의 표정에서 아주 작은 웃음을 발견했다. 공감이었을까? ‘후진 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분위기가 섬세하게 밝아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아, 내 몸 정말 후졌구나’ 집에 가서 거울을 봤는데 정말 그랬어요. 이제 이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구나. 참 후졌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면 꽤 비장한 자기 성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날, 요가 스튜디오에선 아주 다른 뉘앙스였다. 우린 동그랗게 반원 모양으로 앉아있었다. 말투는 명랑하게, 적당한 웃음을 섞어서, 아주 적절하게 스스로를 낮추는 말에 선생님도, 동기들도 같이 웃어주었다. 이후에는 수련이 내 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놀라움과 가능성이 나를 지도자 과정까지 이끌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몇 주 후, 그날도 철학 수업으로 시작하는 아침이었다. 선생님은 에세이 숙제를 한 명 한 명 돌려주셨다. 그 에세이에도 “내 몸 참 후지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약간의 시간을 갖고 나서, 선생님은 내 에세이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우성 씨 에세이를 읽고 생각을 좀 해봤어요.”


그 짧은 대화로부터, 그날은 이제 잊을 수 없는 아침이 되었다.


“워낙 말도 유쾌하게 하고 그런 성격이라서, ‘몸이 후지다’는 이야기를 할 때, 처음엔 저도 그냥 가볍게 들었어요. 그런데 에세이를 읽어보니까, 거기도 쓰여있는 걸 보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어. 그 말이 전부가 아닌 것 같았어요, 느낌이. 아, 저 가벼운 말 뒤에 뭔가 있구나. 우성 선생님 마음속에,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떤 마음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성 선생님 어때요? 그래요?”


순간 명치와 쇄골 사이 어딘가 묵직해졌다. 시야는 좀 좁아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얼굴과 눈빛이 내 눈 앞에서 점점 커졌다. 나는 그때 어색해서 웃고 있었을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을까? 기억이 없는 채, 완전히 발가벗은 것 같은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장면만 머릿속에 박혀 있다.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시기의 어떤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말하지 않으면 마음을 드러낼 수 없고, 마음 없이 통하는 관계는 없는 거니까.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내 마음속의 마음, 나도 몰랐던 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내 마음을 살살 달래서 꺼내 놓아야 했다. 어려운 건 결심이었다. 내 마음의 어떤 부분, 아주 작고 연약해서 더 부끄러운 그 부분을 공유하려는 결심.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실은…”


약간의 침묵. 선생님의 눈빛. 나의 결심.


“수련할 때마다 생각했어요. 요가 수련하는 사람들의 몸이라는 게 너무… 예쁘잖아요? 남자나 여자나, 물론 여자 수련생의 숫자가 더 많긴 하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데서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유연하고 강해 보였어요.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수련을 마치고 집에 가서 마주하는 제 몸은 되게 달랐어요. 막 뚱뚱하진 않지만 통통하고, 키도 작고, 앞뒤로 두껍고, 뻣뻣하고 근육도 없는 것 같고, 약간 둥글둥글하고 정말 그저 그런. 몸이라기보다는 그냥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날이 많았거든요.”


이때 선생님의 눈빛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또 한 편의 에세이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의 눈빛과 에너지에 대해. 그 부드럽고 견고한 눈빛 만으로 그와 마주 앉은 미숙한 사람은 얼마나 큰 용기와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시각을 훨씬 앞서는 감각, 총체적으로 따뜻한 기운 안에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동기들 표정도 어쩐지 숙연해진 것 같았다.


“‘후진 몸’이라는 말은, 사실 제가 그날도 웃으면서 했던 말이었지만… 저는 진심으로 제 몸이 좀 별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런 몸으로 이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나면 내가 모두의 앞에 설 수 있을까?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어떤 자세가 안 돼서가 아니라 그냥 몸이 좀….”


깊고 깊은 콤플렉스, 뿌리 깊은 자의식의 고백이었다. 이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의 모든 문장을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아주 거대하고 따끔한 한 문장만은 분명히 새겨져 있다. 위로도 위안도 아니었다. 누굴 달래려는 말도 아니었다. 따뜻하고 관대한 표현과도 거리가 있었다. 선생님이 여지없이 말씀하셨다.


“우성 씨, 앞으로는 ‘내 몸 후졌다’는 말 절대로 하지 마세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졸음인지 피로인지 모른 채 앉아있었던 스튜디오가 햇빛으로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던 아침이었다. 나는 전날 새벽 몇 시까지 일 했었지? 몇 시간이나 잤지? 햇빛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먼지가 그토록 평화로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모양으로 ‘네, 네’ 했다.


분명한 금지였다. 따끔해서, 내 마음에 작은 압정 하나가 박힌 것 같았다. 순간 따끔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압정이 고정하고 있는 작은 그림이 한 장 있었다. 종이 위에 우리가 있었다. 그날 스튜디오에서의 나와 선생님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저쪽 커튼 사이로 햇빛이 예쁘게 들어왔다. 마룻바닥이 반질반질했다. 그날의 나는 마냥 담담했는데, 그림 속에 앉아 있는 나는 좀 울고 있었다. 압정이 따끔해서가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내가, 너무 작고 약했던 내가, 내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 속의 내가 안쓰럽고 불쌍해서였다. 선생님의 단호함이 내 작은 자의식을 마주하게 했다. 마주하니 볼 수 있었다. 후진 건 내 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 후졌다’는 말과 ‘내 몸’을 같이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말은 투명하게 마음을 반영하니까. 내 마음이 나를 그렇게 보는 순간 그렇게 규정되는 것 같아서였다. 말과 마음, 마음과 몸은 얼마나 이어져 있는 걸까?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누군가에게 나의 요가를 나눠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긍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아름다움과 나의 아름다움을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200시간의 지도자 과정 초입에 있었다. 아무것에도 어떤 엄두도 못 내던 때,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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