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나는 누구를 만나려고 그런 밤을 보냈던 걸까?
옆자리가 하나둘씩 비어 가고 있었다. 내 자리도 비우고 싶었지만 일이 남아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마감 즈음의 새벽 사무실은 늘 그런 식이었다. 새벽은 일이 남아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상사도 선배도 없는 상태에서 조용하고 자유로웠지만 야식과 졸음, 망가지는 몸과 스트레스를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일까지 써야 하는 원고와 모레까지 해내야 하는 어떤 일이 머리와 어깨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음이 유난스러웠던 날. 퇴근은 새벽 3시 50분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설 땐 인사를 받아줄 사람 한 명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같이 남아있던 후배의 퇴근은 2시 반이었다. 사무실 안에는 고요, 평화, 냉기, 외로움, 스트레스 같은 단어들이 사람 대신 마구 흩어져 있었다. 일에는 진척이 없었는데 집에는 가고 싶었다. 지금 잠을 자두지 않으면 내일부터는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였다. 그것도 엄연한 작전이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도보로 15분 남짓, 차로는 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그날은 차가 있었다.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와 라디오를 켰다. 노래를 듣다가 말았다. 누군가의 침착한 목소리를 듣다가 다시 말았다. 주파수가 클래식 FM에 머물렀을 때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사람 목소리도 음악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주차장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무섭도록 한산했다. 살짝 얼어있는 아스팔트 위에 신호등 불빛이 반사돼 섞여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이상을 달렸다. 각기 다른 한강 다리를 네 번이나 건넜다. 모르는 골목과 골목 사이를 수색하듯 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건물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이른 새벽, 다른 누군가의 밤샘을 생각했다. 혹은 아직 영업 중인 바의 네온사인, 그 안에서 누군가 나누고 있을 이야기의 가벼움을 생각하면서 속도를 줄였다. 어떤 지하철 역 주변엔 어린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가루에 흠뻑 취한 요정처럼 모여서 웃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불안을 읽을 틈은 없었으나, 행복도 명백하진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따뜻한 음료의 단맛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어떤 도로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일탈을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은 한사코 혼자일 필요가 없는 도시니까. 하지만 누구와 어떤 것도 섞을 마음이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로 호소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누가 그날의 마음을 외로움으로 정의한다면, 그 단순하고 무례한 마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내 안에 너무 많았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외로움은 패배한 자의 핑계 같았다. 그래서 기댈 어깨를 찾았다면 그게 위로였을까? 잠시나마 차게 식은 체온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었을까?
“결국 무덤에는 나 혼자 남은 셈이었다. 왠지 이 상황이 기분 좋았다. 굉장히 아늑하고,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봤는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돌이 쌓여있는 바로 아래, 벽의 유리 부분 밑에 빨간 크레용으로 <이런 씹할>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홀든 콜필드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친구 한테는 얻어터지고, 사기까지 당해가면서 끝내 혼자였다. 콜걸을 부르고 여자한테 말을 붙여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순간 좋은 마음일 수도 있었던 여자 친구와도 잘 된 일이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채, 몸도 마음도 제각각이면서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3일의 기록이었다. 동생 피비를 기다리느라 혼자 들어갔던 박물관에서, 홀든 콜필드는 이렇게 이어 썼다.
“정말 문제였다. 어디서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런 곳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 일단 가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어떤 자식이 바로 코밑에다 <이런, 씹할>이라고 써놓고는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이길 원하면서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혼자인 건 한 순간도 못 견디면서 모든 타인과 영원히 불화하려는 태도. 모든 더러운 것을 경멸하면서도 스스로 더럽혀지고 싶은 성장의 역설 한가운데에 홀든은 있었던 걸까? 동이 트기 직전까지 멈출 수 없었던 새벽의 드라이브,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를 끝내 듣지는 못한 채 가까스로 잠을 청했던 그날 아침의 나는 얼마나 불안했던 걸까?
꿈같은 새벽이었다. 누구의 목소리, 술 한 잔도 청하지 않았다. 혼자서, 혼자이고 싶지 않으면서, 그런 생각도 못 할 정도의 피로와 마주할 때까지 버티고 또 버텼던 밤이었다. 그러다 동이 텄을 때 나는 얼마나 허무하고 또 얼마나 개운했을까? 방황은 어렸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남은 평생의 모든 밤이 그럴 거라고 마냥 생각해버렸다.
“우성아, 어제 몇 시에 들어갔어? 잠은 좀 잤어?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늦지 않게 들어갔어요, 선배. 괜찮아요. 식사는 하셨어요?”
몇 시간 후 다시 출근한 사무실에는 평일의 활기와 마감의 긴장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다시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우리 모두가 끼어 있었다. 완전한 고립을 꿈꾸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모두와 섞여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늘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의지는 희미한 채, 나는 “괜찮다” 말하면서 웃고 있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