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오래 걷다 문득 들어 내려갔던 지하 검도장에서 들었던 그런 말들.
모처럼 학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시험도 끝나 있었다. 그래서 무료하기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채 여물지 않은 마음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그때 그 동네엔 마당이 넓은 주택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었다. 담벼락에는 분필로 한 낙서들이 좀 수줍게 적혀 있었다. 집을 나섰을 때, 해가 나른하게 기울고 있었다.
넘쳐나는 시간을 어쩔 줄 모르던 때였다. 그게 사치인 줄도 모르고 보내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둥둥둥’ 마음이 떠오르는 걸 느끼는 날이 점점 잦아졌다. 땅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잠깐은 자유롭다가, 슬슬 무서워지려다 결국 불안해지곤 했다. 바싹 말라서 버석거리거나 쩍쩍 갈라지는 기분. 시간이 자꾸만 나를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바람은 바깥쪽으로만 불었다. 너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냐고 누가 자꾸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상태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곧 큰일이 날 거라는 신호. 불안과 분노 사이에는 미미한 경계도 없었다.
몇 번인가, 학교에서는 곤란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반장은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반장이면서 아무 대꾸도 안 했다. 내가 침묵하니까 친구들의 조바심이 대신 커졌다. “우성아, 선생님이 책 읽으래. 야, 야, 왜 그래? 아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아래로 깔고, 엉덩이를 의자 끝에 걸쳐놓고 두 팔은 늘어뜨린 채 미동도 않았다. 선생님이 내 자리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제야 선생님 얼굴을 힐끗 봤는데, “어쭈, 이 놈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읽으라니까?”
나는 “이걸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그날 나를 누가 좀 잡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에는 예고가 없는 법이었다. 두통이나 어지럼증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증상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 순간의 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인간 같았다. 교실, 집, 적당히 기울어가는 해 질 녘의 내 방에서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내가 속해 있지도 않은 곳에서 누가 하는 명령 같은 건 들을 필요도 없었던 거였다. 그래서 그날 몇 대나 맞았지? 아주 작은 신음소리도 안 냈으니까, 맞으면서도 목석같았다. 선생님은 약이 바짝 올라서 더 세게 때렸다. 다 맞고 자리로 들어갈 때도 꼿꼿했더니 선생님이 내 등에 대고 “미친” 어쩌고 하는 욕을 들었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우성아 아까 진짜 왜 그랬어…?” 그건 혹시 외로움이었을까?
그날 이후, 또 그런 기분이 들 땐 이어폰을 꽂고 집을 나섰다. 방을 나가서, 마당을 벗어나, 대문을 열고 나갔다. 일단 공간을 환기하고 싶었다. 오른쪽으로 가면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그날은 왼쪽으로 걸었다. 오래 걸으면 친구네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20분 정도 걸었을까? 나는 왜 그리로 들어갔을까? 시야 오른쪽에 지하 검도장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나는 누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듯 걸어 내려갔다.
토요일 해 질 녘. 도장은 텅 비어있었다. 오후 수련의 열기도 가신 후였다. 나는 중학교 때 배우던 검도 생각이 나서 거기 있는 죽도와 호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어폰은 그대로 꽂은 채 어떤 조바심도 없었다. 친구네 거실 둘러보듯 느긋한 마음이었다. 관장님이 나를 발견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저…무슨 일이십니까?”
깜짝 놀라 이어폰을 뺐다.
“아, 그냥 동네, 이렇게 지나가다가…”
“검도 수련 알아보십니까?”
“전에 하긴 했는데, 지금은 그냥…”
“아, 그럼 혹시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
그렇게 느닷없이 관장님과 마주 앉게 됐다. 몇 모금을 마셨을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을까? 모든 문답을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그날 종이컵에 담긴 차 한 잔을 다 마시는 동안 관장님이 했던 몇 마디 말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이런 말.
“그럴 수 있어요. 그때는 특히 더 그럴 수 있어요. 마음이 그렇게 장난을 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아까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아서 산책 나왔다고 했죠? 그렇게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 거예요. 물론 검도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죠. 중학교 때 수련했다면서요. 몸을 다시 움직이고 싶어 지거든 언제든 찾아와요.”
혹은 이런 말.
“키가 큰 사람에게는 큰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고,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작은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예요. 그건 비교할 수가 없고,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죠. 관장님도 봐요, 이렇게 작은데 어때요. 멋있지 않아요? 작고 큰 건 아무 관계가 없어요. 얼마든지 멋진 몸,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낯설고 단단한 무도인에게, 아마 나는 그때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뭐라고 질문했을까? 질문이기는 했을까? 관장님은 조그맣고 예민한 10대 남자애의 상태와 고민을 어떻게 꿰뚫어 봤을까?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 <데미안>에서, 내내 인도자를 찾던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를 만났을 땐 이런 말을 들었다.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가 부유한다고 느낄 땐 어김없이 산책한다. 요즘에도 ‘둥둥둥’ 마음이 떠오를 땐 그때 그 건물 지하 검도장에서 관장님과 나눠 마셨던 차 한 잔을 다시 생각한다. 마음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 영원한 인도자,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그날의 대화 이후,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이 나한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게 됐다. 인생은 어딘가 속하려고 애쓰는 시간의 총합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내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순간의 집합이라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외로움은 누가 옆에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나는 나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니 답도 내 안에서 찾아야 했다. 멋진 관장님과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찾아갔던 그 건물 지하는 부산한 창고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의 데미안. 20여 년 전 어느 토요일, 해 질 녘에 만난 사람이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