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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Feb 27. 2020

처음 가본 서가에는

과연 오랫동안 상상만 하던 장면이?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저 책들 사이에 내 책이 한 권 놓여있는 기분은 어떤 걸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정작 서가에는 못 간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결국 3개월 만에 처음으로 강남 교보문고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어요. 


실은 약간 긴장했습니다. 어디에 놓여있을까, 어떻게 놓여있을까, 아직 서가에 놓여있기는 할까. 이미 외면받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는 그런 책인 것 같아요. 출간 3일 만에 중쇄! 한 달만에 또 몇 쇄! 같은 식으로 폭발적으로 팔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얼어붙은 출판 시장이니 불황이니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정우성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쓴 관계와 사랑에 대한 글을 선뜻 읽어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거예요. 


실제로 몇 주 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을 때는 제 책이 이미 서가에서 철수한 후였습니다. 마지막 한 권 남은 재고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꽂이에 꽂혀 있는 딱 한 권만 볼 수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서가에 놓으려면 도톰하게 쌓을 수 있는 정도의 두께는 되어야 했을 테니까요. 일단 들여놓은 것들은 팔렸지만 추가로 주문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요. 야속하고 아쉽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말이에요. +_+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뚫고, 마스크를 하고 찾아간 강남 교보문고에는 아직 "화제의 에세이" 코너에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신간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위에 제 책이 있는 걸 보고 혼자 살짝 뿌듯해했는데요, 그런 일로 뿌듯해하는 제 자신이 썩 웃기기도 했습니다. 아무 상관없지만,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책과 같은 서가에 놓여있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거든요. 언젠가 저도 제임스 설터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출간 후, <예스 24> 온라인에 실린 인터뷰에는 이런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 



많이 추상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또 이 책을 쓰시며 그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태도 혹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랑에 대한 그 숱한 판타지들이 자리 잡을 틈을 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떨려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나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쾌락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사랑은 그보다 훨씬 지루한 형태를 지향하고 있었어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어떤 감정의 파동도 없는 상태. 둘이서, 그저 평화롭게 하루를 살고 버틸 수 있는 힘으로서의 사랑. 그저 ‘지금,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구나’ 하는 생각, 그 존재감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가는 일상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순간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평화롭고 지루하게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고약한 시간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같이 기를 수 있겠죠. 그렇게 믿습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 있어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역시 폭발적으로 독자를 찾아갈 책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어디까지나 평화롭고 지루하게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잔잔하게 느껴지는 사랑 이야기니까요. 


서가를 벗어나 다시 걸으면서, 이 책도 제가 생각하고 지향하는 사랑의 형태를 닮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오래, 어쩌면 지루하게 서가에 머물면서 비슷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 이미 그런 사랑을 소유한 누군가의 손을 찾아가기를 바랐어요. 책을 내는 사람은 또 다른 바람은 이런 거 아닐까요?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아울러 아무리 흉흉하고 수상한 세상이라도 위의 인터뷰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평화롭고 지루하게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고약한 시간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같이 기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서로의 힘일 테니까요. 


여러분의 일상이 평화롭기를, 모두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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