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성 Feb 22. 2020

첫 책이 나오고 오랫동안

이제 조금씩 할 수 있는 이야기.

약 5개월 만입니다. 이 공간을 오랫동안 비워뒀어요.


그동안은 요가 에세이와 고전문학 에세이, 관계 에세이를 쓰고 또 올려두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 홈페이지와 이 공간에 같이 공유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 좀 다른 방식으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글은 글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운영하고 싶었어요. 분리하면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네, 저는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글을 쓸 때만큼은. 적어도 이 공간에서 만큼은요.


감사하게도, 여러 플랫폼에 쓰던 글 중 몇 편을 출판사에서 눈여겨 보셨다가 출간 제의를 주셨습니다. 작년 봄의 일이었어요. 외투를 벗기에는 좀 춥고, 패딩을 입기에는 좀 멋쩍은 날씨였습니다. 제가 <엘르 디지털>에 '관계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던 원고를 책으로 묶고 싶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책은 늘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10년 이상 기자로 일하면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 회사를 그만두자 생기는 것도 신기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비워둘 수밖에 없었던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첫 책이 나왔습니다.


<내가 아는 계절은 모두 당신이 알려주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예요. 관계, 연애, 사랑, 이별, 다시 사랑. 아주 오래된 이야기와 그리 오래지 않은 이야기, 바로 지금의 이야기까지가 담겨있습니다. 11월 마지막 날에 출간돼서 12월 초에 서가이 깔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만 3개월 정도 되어 가네요. 벅차다면 벅차고 부끄럽다면 또 부끄러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책이 나오고 나니 어쩌면 그렇게 흠만 보이는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담기기는 했는지, 읽는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출판사에 부끄럽지는 않은 책이었는지. 어떤 식으로든 피드백을 듣고 싶은 마음도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잡지를 만들 때는 못 느꼈던 감정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정작 저는 아직 제가 쓴 책을 읽지 못하고 있어요. 어제 밤에서야 첫 몇 장을 넘겨 봤답니다. 저도 좀 당황스러웠어요. 읽고 또 읽고, 다음에는 어떻게 써야지 다짐하던 기자 시절과는 아주 다른 마음이라서. 세상에 내놓고 다시 만나기까지 3개월이나 걸릴 거라는 생각은 못했으니까요.


12월에는 태국에서 3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가운데 2주는 코사무이에 있는 요가 스튜디오, 비카사(VIKASA)에서 수련했어요. 일어나자마자 수련하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책을 읽다가 수영장에 나가고, 거기서 다시 책을 읽다가 요가를 수련했던 하루. 저녁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20분이나 걸어가서 먹고, 백팩에는 내일 아침에 먹을 요기 꺼리들을 좀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던 밤너무너무 귀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겨울에 3주를 이렇게 통째로 비울 수 있는 날이 또 올까요?  그 시간을 거쳐, 저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요.


첫 책을 내고 다시 제 손에 쥐기까지, 첫 페이지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저한테도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에도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고 또 있을 예정입니다. 아무것도 쉽지는 않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은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떠올랐을 때 써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고 마는 생각들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3주 동안의 겨울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집을 채우고 있었던 냉기를 기억합니다. 이 공간이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그렇게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웠던 몇 개월동안 꾸준히 와주신 분들, 구독까지 해주신 분들의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만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