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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Jul 06. 2018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에 대하여

몸도 마음도 유연해지고 싶었다. 그 안에 진짜 힘이 있었다.

수련 시작 10분 전, 나는 매트 위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힘을 빼려고 애를 쓴다’는 건 어쩐지 비문 같지만 빼고 또 빼도 남아있는게 힘이었다. 완벽하게 이완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어딘가의 근육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 눈을 감고 숨을 쉬면서 세세하게 들여다봐야 알 수 있었다. 긴장하고 있는 근육들을 찾으려고 조용히 애를 썼다는 뜻이다.


‘자박자박’


하나하나 힘을 풀어주면서 몸도 마음도 차분해질 즈음 익숙한 발소리를 들었다. 디디 듯 스치 듯 하는 소리, 맨발로 마룻바닥 위를 사뿐하게 걷는 소리, 조심스럽고 따뜻한 소리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들어오는 소리였다. 그때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엔 짧게 나마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분은 늘 퇴근하고 수련하러 오셨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요가를 해야 한대요.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요가 수련을 하고 집에 가면 가족들한테 훨씬 더 충실하게 잘할 수 있대요.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다 떨쳐내고, 몸도 마음도 너그럽고 부드러워져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정확히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 선생님이 했던 질문이 있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좀 부끄럽고 민망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당신에게 요가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의 웃는 얼굴. 나는 몇 가지 단어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실은 시기마다 변하는 마음이었다. 대답하려고, 나는 몇 년 전으로 돌아갔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마음이었다. 자조가 습관이었던 시기였다.


매달 잡지를 만드는 일은 변함없이 역동적이었다. 1년 동안의 삶은 열 두 권의 잡지로 채 썰 듯 요약할 수 있었다. 서재에 쌓인 책들을 보면 ‘저게 내 세월이구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쾌함을 사랑했지만…. 돌아보면 평화가 드물었다. 일 말고 다른 건 살필 틈이 별로 없었다. “잘 지내고 있니” 물어오는 친구한테는 이렇게 말했다.


“서점에 가면 [GQ]있잖아? 거기 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게 내 한 달이야. 그거 말고는 정말 별로 없어, 그게 전부야.”


우리는 이런 말을 웃으면서 했다. 친구는 “기사 잘 읽었다”는 메시지를 가끔 보내왔다. 그렇게 가까스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엔 좀 다른 메시지를 받았다.


“나 싱가포르 가.”
“오, 잘 다녀와! 언제와? 선물 사다 줄 거야?”
“하하, 야 나 4년 후에 온다. 그때 줄게.”
“….?”


친구는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출국하는 장기 발령이었다. 전화해서, 가기 전에 꼭 만나자 약속 했다. 언제든 너 출국하기 전에 내가 회사 앞으로 찾아가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헤아릴 틈도 없이 지났다. 나는 피할 수 없었던 약속 자리를 파하고 지쳐서 혼자 걷고 있었다. 좀 걸어야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발걸음 뒤로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던 주말이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친구의 출국 하루 전이었다. 급하게 전화했다.


“너 내일 출국이야?”
“응, 지금 회사에서 짐 다 빼고 집으로 가려고.”
“정말? 영화처럼 박스 하나 들고 뜨는 거야? 멋있어!”
“멋있긴, 얼른 가서 짐 싸야 한다. 아직 짐도 못 쌌네? 너 회사 차리고 바쁠 것 같아서 전화 안 했어.”
“…미안해, 보고 싶었는데.”
“야, 괜찮다. 다녀와서 보면 되지. 놀러와, 싱가포르.”


이럴 땐 농담이야말로 공허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오로지 내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말 같았다. 친구는 언제나처럼 너그럽고 관대했지만.


헤어지는 일에는 영영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고 묘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언제부턴가 달라지기 시작한 삶의 궤적을 따라 그림자처럼 옅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멀어질 때마다 같이 지냈던 시간이 다 흩어지는 것 같았다. 아주 개인적인 역사가 하나하나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뒷모습들을 보내주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쓰게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 채, 전화를 끊으면 내 친구가 없는 한국이 되는 게 싫었다. 괜히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내내 든든한 친구였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귀해지는 사이였다. 좋은 친구와 오래오래 지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의젓하게 보여줬던 친구. 살갑게 투덜거리면서도 순하고 우직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친구네 회사가 있는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저 건물에 내 친구가 있다’는 사실로 위안이었다. 4년 후에 돌아온다 해도, 시간은 또 그렇게 빠를 거라 해도 전화 한 통으로 보낼 친구가 아니었다. 정말 쓸데없지만 웃기는 물건을 사주면서 울지 않고 보내주고 싶었다. 가서, 멀어져서, 우리 또 강하게 살아남아 같이 맛있는 걸 먹자고 말해주고도 싶었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약해서 많이 긴장했을 텐데.



몇 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도 쫓겨서, 그렇게 보내는 인연과 시간이 잡지만큼 쌓여있었다. 나는 시간을 살아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시간과 마음에 빚을 지는 것 같았다. 칼럼을 쓰려고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었다. 떠나고 싶지만 방도가 없었다, 아기를 가지려니 엄두가 안 났다, 그러니 결혼도 주저하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모두 비슷한 처지였지만 서로는 위안일 수 없었다. 매일 새로운 스트레스와 익숙한 권태 속에서 제각각 치열했다. 녹록치 않아서, 당시 사무실에선 이런 푸념도 참 많이 했다.


“우리는 모국어가 없으면 직업이 사라져. 그러니까 한국을 떠나면 아주 다른 존재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어. 일은 너무 좋은데, 그게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차피 다룰 거라면 국적이 없는 언어를 배울 걸 그랬어. 프로그램 언어 같은 거, 그치? 우리 지금이라도 배울까?”


거짓말. 실은 떠날 생각도 없으면서 답답하니까 하는 말이었다. 애착이 크니까 할 수 있는 농담이기도 했다. 떠나지 않고,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맞아, 선배. 우리 목공 배울까? 도자기?”


서로 눙치면서 버티는 시간이 또한 잡지처럼 알차게, 또 무겁게 쌓여갔다. 그러다 점심 시간이 되면 요가복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해가 질 무렵, 다들 저녁 식사 채비를 할 즈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사무실을 나서기도 했다. 그땐 “요가하러 가요” 말하기가 왠지 쑥쓰러워서 “운동하고 올게요” 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양말을 벗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했다. 매트를 깔았다. 맨발로 누워서, 딱 내 몸과 매트만큼의 면적 위에서 눈을 감았다. 그럼 하루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요가는 몸으로 하는 거니까, 국적이 필요 없는 언어라는 점에선 분명한 돌파구이기도 했다.



너무 피곤해서 바스라질 것 같은 날도 어떻게든 매트 위에 눕거나 앉으려고 힘을 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양한 이유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날은 도망치듯 요가원으로 달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은 날도, 다녀오면 더 지쳐서 아무 것도 못하는 거 아닐까 두려웠던 날도 그랬다. 그러다 깨달았다. 쫓기는 삶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효율은 바닥인 채, 스트레스와 피로를 감당할 틈도 없이 내 마음의 시스템이 무너진 거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 시간만 비우자는 마음이었다. 한 시간도 못 비우는 일상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다녀와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졌다. 눈을 떴더니 온통 하얗고 소복하게 눈이었던 언젠가의 겨울 같았다. 너무 예뻐서, 오늘 같은 날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수련을 마치고, 그런 기분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커피를 마시자”고 말할 수 있었던 오후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일의 효율이 오르는 건 무슨 마법 같았다. 절벽 같이 암담했던 칼럼의 돌파구를 갑자기 찾아내거나, 집중이 안 돼서 괜히 붙들고 있던 일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긴장한 마음엔 조바심 뿐이었다. 유연해져야 힘을 줄 수 있는 법이었다. 매트 위에서 그걸 배웠다. 배우면서 연명하던 시간이었다.


“의지인 것 같아요. 매일 다른데, 오늘은 그래요.”


시작할 때, “’당신에게 요가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있겠어요?”라고, 웃으면서 물어왔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했던 대답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시작한 수련이었다. 매일매일 조금 더 유연해지고자, 진짜 힘을 찾고 싶어서. 그 힘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만나고, 돌아올 친구를 위한 틈을 조금 더 넓게 남겨 두려고.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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