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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Aug 20. 2018

이런 봄의 1번 트랙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을 읽고

지루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날, 이렇게 살아서 될까 싶은 오후였다. 이미 무수히 많았던 날이었다. 늘 무서웠다. 누군가 이런 상태를 평화로 여기고 시기한다면 차라리 불안해지고 싶었다. 불온해지고도 싶었다. 그런데 위기의식은 없었다. 그대로 안주하고도 싶었다. 예리한 선 위에 혼자 서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고 싶은 상태. 또는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은 상태. 이상하게 흥분했는데 한편 묘하게 침착했던 언젠가의 4월 같았다.


이럴 때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는 일은 링 위에 던지는 흰색 수건 같다. 권태에 항복하는 가장 소극적인 방식, 벗어날 의지가 전혀 없다는 신호였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를 순서대로 보다가 다시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다시 페이스북, 그대로 트위터까지 반복했다. 봤던 사진을 또 봤다. 아까 최신이었던 맨션을 다시 볼 때까지 지루함에 지루함을 더했다. 시간도 멍청해졌다. 내 몸 같은 건 이대로 소파 아래로 꺼져버렸으면 싶었다. 저 아래엔 지루함도 없겠지, 자극도 권태도 사라지겠지, 그럼 누굴 그리워할 일도 없겠지.


시마무라의 여행은 아주 지루한 습관 같았다. 가족은 있지만 직업은 없고 서양 무용에 대한 글을 쓰거나 번역하면서 적당히 숨어있는 삶. 어디서 벗어나려고 타는 기차가 아니었다. 그곳에 속하려고 안기듯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렇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도착한 곳이 니가타였다.


도쿄는 부록 같고 니가타가 일상 같았다. 도쿄에서는 내내 나방이 알을 까는 계절이었고 니가타는 깨끗하고 청결한 도시였다. 도쿄에는 가족이 있었고 니가타에는 고마코가 있었다. 관능과 유혹이 눈처럼 빛나는 도시였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코를 처음 봤을 때 시마무라는 이렇게 썼다. 시마무라는 온천장을 찾은 손님이었다. 고마코는 어떤 필요에 의해 하인을 따라 들어온 게이샤였다. 둘 사이, 도리 없는 거리감의 시작이기도 했다. 시마무라는 이렇게도 느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관찰하다 그만 눈이 부셨다, 반해버렸다는 고백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점잖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고마코도 비슷했다. 어쩐지 토라졌다가, 무심했다가, 잔뜩 취해선 시마무라의 팔뚝에 이빨 자국을 냈다. 그대로 몸을 의지하곤 손가락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다가 결국 ‘시마무라’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 쓰게 됐다. 시마무라는 이튿날 도쿄로 돌아갔다.


유난히 연애가 잦은 그 친구가 들으면 그저 둘 다 바보 같다고 했을까? 그 흔한 남성성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시간 같았을까? 같이 밤을 보내는 일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달라지는 것도 잃어버릴 일도 없는데?


철마다 반복되는 여행,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 알 수 없는 순간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그래도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둘 사이의 관능은 서로 만지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애타게 깊어졌다. 인스타 피드 같은 역설. 하지만 어떤 관계는 만지는 순간 평범해지고 마니까, 이후의 절차는 명백하다. 이별이 도사리고 있다. 다시 불이 켜지면 객석엔 아무도 없다. 억지로라도 볼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장난 같아도,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관계의 규칙이라서.


지루하고 또 지루한 와중에도 반짝이는 게 일상의 신비라면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누가 누굴 팔로우하고 말고 하는 일, ‘맞팔’이나 ‘선팔’ 같은 단어야말로 재미없지만 그날 오후는 좀 달랐다. 어떤 음악 플랫폼에서 그 사람이 나를 팔로우했다는 알림을 받고 자연스럽게 그쪽 피드로 넘어갔을 때였다. ‘아, 여기선 서로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 수 있구나’ 생각하곤 그가 듣던 음악을 무심코 터치했던 때였다. 처음 보는 앨범, 1번 트랙을 막 재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토록 지루했던 하루의 축이 조금 기우는 것 같았다. 육교를 내려가는 계단 중간쯤에서였다.

“나는 여행 중이에요, 당신은 어떻게 지내요?”


딱 한 문장만 쓰여있는 엽서를 받은 느낌이 이럴까? 그때 우리가 다 못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는 장면이 마음속에서 이어지려는 것 같았다. “당신을 좋아합니다”와 “좋아했습니다” 사이에서 얼버무리다 딱 거기서 멈췄던 여름밤이었다. 취해서 좁아진 시야로, ‘이래도 될까’ 싶은 조바심과 마지막 같은 불안이 아무렇게나 섞여 시간에 쫓기는 밤이었다. <설국>에는 이런 부분도 있었다.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 진 산을 바라보노라니, 감상적이 되어 시마무라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졌다.”


그때 우리 손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면 어땠을까? 어떻게든 닿을 수 있었다면, 여지가 있었다면 우린 지금까지 행복했을까? ‘그때 그러지 않았으니 지금 이렇게 좋은 순간도 있는 거지’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시간을 멋대로 조립해서 합리화하는 변명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마음을 계절마다 확인하면서 여행하듯 만나는 인연이라면 또 어떨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아주 다른 풍경에 안기던 그 마음처럼.


우리는 곰이 아니니까, ‘덕분에 참 좋은 노래를 듣고 있다’고 지금쯤 보내는 메시지 정도는 산뜻하지 않을까? 마스크를 쓰고 걸어도 가벼워지는 마음이었다. 영상 19도, 육교의 마지막 계단, 첫 번째 트랙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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