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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성 Aug 20. 2018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야

알베르 카뮈, <이방인>을 읽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녹색등을 기다리다가 그만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정오를 막 지난 시간, 맞은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회사에서 나온 일군의 사람들이었다. 표정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는데, 뭘 읽어낼 수도 없는 얼굴이어서 가늠할 수 없었다. 거대하고 두껍지만 흥미는 느낄 수 없는 중세 암호 책 같았다. 압도적인 양감이었다.


‘이러다 납작하게 눌려 사라질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순수한 공포였다. 거대한 일상의 덩어리가 나를 향해 행진하는 듯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시간의 총합이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시야가 좁아졌다. 그 무수한 흰색 반팔 셔츠 안에 있는 살은 물렁할 것 같았다.


그것이 삶의 증거라면 부정하고 싶었다. 깊숙이 찔러 휘젓고 싶었다. 한 번 터뜨려보고도 싶었다. 그렇게라도 균열을 냈다면 지금 좀 나았을까? 나는 다음 신호에 가까스로 걸을 수 있었다. 이어폰에선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섭씨 32도를 넘나드는 십여 년 전의 더위였다. 귀를 후벼 파는 것 같은 트럼펫이었다.

프랑스 어느 해변에서도 삶은 예외 없이 냉혹했다. 뫼르소에겐 그날의 모든 순간이 살인의 원인이었다. 산책과 더위, 눈이 부시고 뇌가 쩌렁쩌렁한 감각. 아랍인은 칼을 꺼냈고 뫼르소는 빛에 찔렸다. 논리, 이유, 언어도 필요 없었다. 겨를도 없었다. 백 번 양보하면 첫 한 발은 정당방위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시 쏜 네 방의 총알은? 허무하고 강렬해서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중략)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 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다섯 발의 총알이 뫼르소를 아주 다른 세계로 던져 버렸다. 이제 냉소는 끝났다. 거긴 감각과 무심의 세계가 아니었다. 법과 재판의 세계였다. 뫼르소에겐 언어가 필요했다. 다수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 그렇게 믿기로 정한 것의 질서에 순응해야 했다. 온통 낯선 것, 때론 말이 안 되는 것에 그날의 인과를 의탁해야 했다. 온통 모르는 세계의 언어였다. 균열은 메워지지 않았다. 한 번 기울어진 균형을 회복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거부하기로 했다.

결국 언어와 판단의 문제였다. 뫼르소의 재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살아 보면 수수께끼 아닌 순간이 없었다.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에서도 그랬다. 나는 냉소할 틈도 현실감도 없는 채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이 세계에선 저 장면이 점심시간의 약속이라는 걸 억지로 배우는 것 같았다. 그게 세상의 질서였는데 나는 배제된 것 같았다. 모든 대화가 암호 같았다.


방금 저 말은 무슨 뜻이지?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땐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누가 “귀엽다” 말하는 순간, ‘아, 저게 귀여운 거구나’ 배웠다. “예쁘다”는 말은 뭐지? 갖고 싶다는 뜻인가? 조금 커진 동공으로 언어를 잃는 건가? 그냥 아름답다는 뜻인가? 봄처럼?


단어를 귀납법으로 이해했다. 충분한 사례가 쌓인 후에야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는 사이 나는 좀 이상한 사람, 서툰 사람, 냉정하지만 묘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져도 오해는 쌓이던데,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이게 그 흔한 ‘소통’인가? 차라리 침묵이 낫지 않을까?


살인은 메울 수 없는 균열이었다. 그 사이로 죄와 벌, 상식과 판단이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판단의 고비마다 묻고 싶었다. 명백하니까, 살인이야말로 훌륭한 구실 아니었을까? 뫼르소를 격리한 건 정말 살인이었을까? 재판은 어느새 엄마의 장례식과 뫼르소의 태도를 단죄하고 있었다. 언어는 거대한 혐오를 위한 도구였다. 법은 어쩌면 미움의 근거였다. 그래야 모두가 (좀 편한 마음으로) 돌을 던질 수 있었다. 살인하지 않았다면, 뫼르소는 자기 세계에서 그럭저럭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르겠지만 결혼은 좋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여자에게는 고백도 받았을 것이다. [이방인]의 마지막 문단, 카뮈는 이렇게 썼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가 암호라면 풍경이 해답 같았다. 나는 해석이 필요 없는 장면 앞에서 기꺼이 압도당했다. 호주 사막에 덩그러니 있던 울루루 앞에서 해가 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저녁, 텐트에 누워 10분에 몇 개씩이나 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보던 시간 같은 것.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으니 진실은 언어가 없는 곳에만 기꺼이 머물다 곧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귀하고 소중해서,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순간이라는 확신이 그토록 맑았다. 뫼르소에게도 그런 밤이었을까?


벗어나지도 못할 거면서 속하고 싶지도 않고, 기꺼이 혼자이고 싶지만 고립도 못 견디는 삶. 마음을 깎아 질서를 배우면서 이만큼의 시간을 어영부영 흘렸어도 못 잊는 순간이 있다. 해 지는 사막에서 어둠을 맞을 때, ‘까르르!’ 웃으면서 물색없이 치던 박수, 소원을 빌 틈도 없이 몇 개의 별이 한꺼번에 떨어지던 순간, 당신이 꽃밭에서 그러 듯이 내 방에서 옷을 갈아입던 그제, 나란히 누워 부끄러울 틈도 없이 좋았던 그때.


‘보고 싶어’ 말하고 싶은 마음이 애틋했다. 점점 벌어지는 상처가 아파서 내려다보면서도, 그런 순간들 덕에 내일을 지탱할 수 있는 거라고 혼자 믿어왔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같이 있으니 우리는 누구에게도 이방인이 아니야, 그렇게 서로에게만 위안인 채.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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