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생각.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 생각해 본 건 아마 대학에 입학했던 그해였던 것 같다. 1학년 1학기 첫 수업이었던 '문학과 사회'라는 교양 강의에서, 얼굴과 몸이 몹시 야위었던 담당 강사는 첫 번째 과제물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전태일 평전> 독후감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 그날 그 수업이 끝나고, 나는 좁아터진 고시원 한 구석에서 그 책들을 며칠 동안 읽어 나갔다. 책 속에서 내가 본 건 무섭고 어두운 세상이었다.
첫 직장은 그런 무섭고 어두운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나보다 그 회사의 명함을 먼저 받은 사람들 역시 그런 종류의 책을 읽은 것으로 보였지만, 그건 모두가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지 회사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필요한 지식은 아니었다. 또한 직장 민주화니 사내 민주화니 같은 말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건 늦은 밤 술자리에서만 오고 갈 뿐 아침 해가 뜨면 모두가 잊어야만 서로가 편한 금기와 같았다.
남미 대륙을 밟은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처음부터 남미를 가겠다는 계획은 없었으나, 북미 체류 중 열흘 남짓 여유가 생겨 급히 일정을 짜고 비행기를 탔다. 내가 둘러본 곳은 대학 때 상상했던 그 나라가 아니었다. 건물 외벽은 총탄 흔적으로 곳곳이 움푹 파여 있었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은 위압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기름값은 터무니없이 쌌지만 기름을 넣으려면 수십 분이 걸렸고, 간단한 감기약을 사는 데는 그 이상이 걸렸다.
다시 시작한 일은 세상일을 다루는 곳이었다. 회사에서도 술집에서도 모두가 세상일을 입에 담았다.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모든 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세상일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공동의 적이 떠나간 무렵부터였다. 한 마음으로 뭉쳤던 기세들이 갈 곳을 잃어버리자 내부의 문제들이 하나 둘 붉어지기 시작했고, 조직의 밑천은 긴 가뭄 뒤 논바닥처럼 뚜렷하게 드러났다.
오늘 동네 도서관에서 오랜만에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다시 보게 됐다. '세상의 요즘'이라는 이름을 단, 사서들이 때에 맞춰 추천하는 도서들 앞에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이 키워드를 설명하는 책으로 <능력주의와 불평등>, <불평등의 대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그동안 이 단어를 잊고 살았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잊고 사는 게 늘 편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