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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Sep 04. 2022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도시 생활자. 

그윽하고 쓸쓸한 책이었다. 2021년 9월에 나온 <외국어 학습담>이 만선을 꿈꾼 선원의 포부같은 느낌이었다면, 2019년 5월에 출간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는 항해를 끝낸 선장의 회상같은 느낌이었다.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문장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돌이키는 문장들은 은근하게 슬펐다. 새롭고 아련한 책이기도 했다. 나와 아내의 고향 대구를 다룬 문장에서 '도시 재생'의 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더블린을 다룬 문장에서는 비행기 좌석까지 예매해놓고 엎어버린 2010년의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 책에서 로버트 파우저 박사가 다룬 도시는 모두 14곳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도시를 4군데 다뤘고, 아시아 8곳, 유럽 2곳을 다루었다. 북미의 도시는 미국의 앤아버, 뉴욕, 라스 베가스, 프로비던스이고, 아시아의 도시는 일본의 도쿄, 구마모토, 가고시마, 교토 그리고 대한민국의 서울, 대전, 대구, 전주이며, 유럽의 도시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영국의 런던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부제를 단 1장 앤아버는 파우저 박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마지막장 프로비던스는 현재 그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본 표현은 대륙과 국가를 초월한 '변방'과 '중심' 이라는 개념이었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는 교육 수준이 높고 정치 의식 또한 높은 지역이지만 뉴욕에 비해서는 턱 없는 변방이었다. 앤아버 시민들 역시 제 고향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중심 중의 중심 뉴욕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일본의 가고시마, 구마모토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근대화가 시작된 곳이고 산 좋고 물 좋아 지역 주민들 역시 마음이 너그럽지만, 후쿠오카와 오사카 그리고 교토와 도쿄에 비해서는 비교도 안 되는 변방 지역이다. 


212쪽부터 213쪽 까지의 문장을 보자. "교토는 교토였고, 가고시마는 가고시마였다.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장점을 이곳에서 누릴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면이 또한 존재한다는 걸 나는 잘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어릴 때부터 내 안에 무의식처럼 자리잡은, 앤아버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중심에 대한 집착을 이제야 비로소 극복했다는 확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결국 어떤 도시에서나 즐거움은 내가 노력해야 얻는 것일 뿐, 저절로 얻는 건 없다는 사실을 먼 길을 돌아 알게 된 셈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았거나 스쳐갔던 도시들을 쭉 돌이켜봤다. 오래 살았지만 별 감흥이 없는 도시도 있었고, 일주일 남짓 머물렀지만 강렬했던 도시도 있었다. 귀거래사를 부르며 고향집 마당을 쓸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한다. 그 선택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고, 포기를 하게 되면 마음이 쓰라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복되는 선택과 포기를 거치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는데, "각국 도시 생활자"의 여러 경험들을 읽어보며 나와 우리 가족의 앞날을 진지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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