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자 감무 열전 樗里子 甘茂 列傳.
이름 없는 사람이 남긴 진솔한 말, 오늘 우리가 읽을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리자 감무 열전> 역시 앞서 읽었던 <장의 열전>처럼 말로 먹고 살았던 전국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아빠는 저리자와 감무 두 사람 보다는 '소대'라는 사람이 '상수'에게 했다는 말을 너와 함께 읽고 싶다. 아빠가 이미 '소대', '상수'라는 이름을 밝혔는데 왜 굳이 '이름 없는 사람'이라 했냐고? 그래, 세상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 또 어디있겠냐만 사람이 태어나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은 채 죽어버리면 역사는 그 사람들을 그다지 기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대'는 전국시대 한나라 사람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리자 감무 열전>에 소개되어 있지 않다. 단지 진나라와 한나라 사이가 일촉즉발의 상황일 때 한나라의 입장을 진나라에 전달하고, 진나라에서 나온 '상수'를 설득하는 정도로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이 '상수'는 진나라 소왕의 외척이기까지해서 어느 정도 권세도 있는 사람인데, '소대'의 신분에 대해서는 사마천도 따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아빠는 이번 <저리자 감무 열전> 중에서 이 '소대'가 남긴 말이 참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빠가 사로잡힌 문장을 함께 읽어볼까? "세상 사람들은 '존귀하게 된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가 존귀하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 소대의 이 문장이다. '존귀'가 무슨 뜻이냐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니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다음 예문을 읽어보자. "모든 사람은 다 존귀하다." , "그 부부는 부와 존귀를 버리고 시골로 갔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존귀와 개성을 빼앗기도 했다." , "존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야 한다."
'존귀'가 어떤 것인지 조금 느낌이 오니? 다르게 설명을 해볼까?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익혀야 존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외려 존중만 받으려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좀스러워지고 독단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존귀하게 되는 과정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며, 그러한 태도는 하루 아침에 얻는 게 아니라 몸에 배어들 때까지 배우고 익혀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저리자 감무 열전>의 주인공 저리자와 감무는 모두 전국시대 진秦나라 사람이고, 사마천은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두 사람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들은 행실이 성실한 군자는 아니지만 전국 시대의 책사策士였다. 바야흐로 진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천하는 더욱 권모와 술수로 치달으려 했던 것이다." 강성한 진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평정한 것이었는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리는 다만 '무언가가 존귀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는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으로 하자. 우리가 '이름 없는 사람'이면 뭐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