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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27. 2021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우리 동네를 만들자.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문방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100원 짜리 동전 하나로 보글보글 게임을 했고, 100원 짜리 동전 몇 개로 잉어 모양 사탕을 먹곤 했다. 그 때 그 아이가 행복했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려보는 지금의 나는, 동전 몇 개로도 놀 수 있었던 그 때가 참 행복했었던 것 같다.


신도시가 조성되고 선친의 직장도 그 근처로 옮겨가면서 내 동전의 추억은 차츰차츰 사라져갔다. 학교 가는 길에 문방구는 몇 개 있었지만, 가게 앞에 게임기는 없었고 점포를 가득 채운 건 학년별 참고서 뿐이었다. 그 때 그 아이는 행복하지 않았고,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나도, 그 때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이 떠나면 건물만 남는다. 남은 건물을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면 건물은 마을과 함께 사라진다. 반면, 남은 건물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때가 되면 그 건물은 다른 건물로 대체되고, 대체된 건물은 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쌓아간다. 그리고 새 사람들은 도시에 적응해가며 옛 추억을 아련하게 생각한다.


딸아이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내 선친이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 역시 아비의 직장을 따라 오래된 도시에서 그보다 조금은 깨끗한 도시로 옮겨와 자라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동네에는 100원 짜리 동전으로 시간을 때울 장소가 없고, 나는 그녀가 훗날 이 동네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할 지 알지 못한다.


1998년부터 20여 년간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 전국 구석구석을 다닌 이미경 작가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기억하는 옛 동네를 떠올린다. 내 조부모가 살던 마을을 추억하고, 선친이 그토록 아끼던 옛집을 생각하고, 딸아이가 함박웃음을 짓는 우리 동네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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