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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27. 2021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내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미 많이 팔렸고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책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건 참으로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그럼에도 잘 팔린 책 한 권을 분석함으로써, 상품으로써의 책, 표현으로써의 책 그리고 공감으로써의 책에 대해 짧은 소견을 밝혀보고자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사회역학자(社會疫學者) 김승섭 고려대 교수가 쓰고 동아시아 출판사가 2017년 9월에 펴낸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이다.


먼저 상품으로써의 책. 책은 엄연히 상품이다. 눈먼 돈으로 책을 만든 게 아닌 이상, 책을 쓰고 펴낸 사람들은 책이 팔려야 즐겁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출판사 직원, 제작사 직원, 택배사 직원, 서점 직원 모두 책 판매량에 일희일비한다. 책은 쌀이자 밥이며, 불안이고 절망이다. 2017년 9월 13일에 초판 1쇄가 나온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2021년 9월 16일 기준으로 초판 29쇄가 나왔으니 1쇄당 2천 권씩만 잡아도 지금까지 6만 여권이 팔린 셈이다. 이럴 때 책은 보람이고 축복이다.


그 다음 표현으로써의 책. 책은 표현의 산물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미술가는 미술로 자기자신을 표현하듯,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은 책으로 그들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 속에는 고통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아픔이 있고 치유가 있다. 김승섭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사회적 상처”(p.71)와 “타인의 고통”(p.303)을 추적했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pp.5~6) 데이터로 다소곳이 표현했다. 그는 주장하되 차분하고, 호소하되 나직하다.


마지막으로 공감으로써의 책. 책은 공감의 매체이다. 사람을 읽지 못하고 시대를 읽지 못하면 책은 잊혀지고 버려진다. 반면 사람을 읽고 시대를 읽으면 책은 기억되고 회자된다. 그는 차별받는 사람들과 해고노동자들을 아파했고,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세월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을 아파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p.166) 마련이기에, 그는 주목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공감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시대를 잘 읽은 책이다. 2010년대는 고통의 시대였다. 세월호가 침몰했고, 헌법이 유린됐다. 나라의 자살율은 계속 1위를 지켰고, 청년들은 이 시대를 ‘헬조선’이라 칭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다고 외쳐도, 사람을 갉아먹어야만 유지되는 대한민국의 이 촘촘한 얼개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만하고 또 살아내야만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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