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막힌 사회의 사회적 참사.
나는 대한민국 국방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함께 시간을 통과한 동료들에게는 애정이 아직 남아있지만, 군인을 한낱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군대 조직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불신은 2007년 12월에 있었던 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 총기사고가 났고, 이등병 하나가 사망했다. 따돌림과 폭행, 무관심이 원인이었고, 해당 부대 관계자들은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사망한 이등병을 직접 본 소대장은 특히 힘들어했다. 상급부대의 지시에 따라 그는 전출을 갔고, 그는 사건 발생 후 며칠만에 부대로 복귀했다. 가만히 두면 딴 생각 할 수 있다는 게 그 지휘관의 판단이었다.
국방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 두 번째 계기는 2010년 3월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었다. 함정이 동강난 것도 충격이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물으러 부대로 찾아왔을 때 무장한 군인이 그들에게 총을 겨눈 건 경악할 일이었다. 천안함 생존자들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함장 혼자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생존자들은 모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기자회견 장소, 사회자 발언, 좌석 배치, 카메라 각도 모두 생존자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몇 달 뒤 다국적 민군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천안함 피격사건> 보고서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충성서약서 같았다.
국방부는 믿을 게 못 된다는 판단을 한 세 번째 계기는, 김승섭 교수의 신작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 실린 국방부의 천안함 후속 처리 과정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존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동강난 천안함에 들어가 사망자들의 유품을 찾으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사망자들의 시신을 감별하라고 했다. 천안함 내부를 청소하는 데 생존자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사망자들은 영웅이고 생존자들은 패잔병이라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생존자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지만, 그들은 생존자들에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치료비를 지급하는 데 인색했다.
천안함 사건은 김승섭 교수의 말대로 '산업재해' 사건이다. 천안함에 탑승해있었던 군인 104명은 모두 나라를 지키려고 그 배에 있었다. 장기복무를 하던 직업군인, 징집을 당한 군인 모두 이른바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그 배에 탑승했다. 그들에겐 천안함이 일터였다. 일터에서 일을 하다 다쳤는데, 일을 시킨 사람은 책임이 없다하고 다친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모든 걸 알아서 하라고 한다. 치료도 알아서 받아야하고 보훈신청도 알아서 해야한다. 국방부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만 능란하고 재빠르다.
이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저자가 2017년에 출간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후속작이다. 이번 책에서도 저자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과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이야기한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여러 제도와 모진 시선을 풀어낸다. 천안함 생존자 뿐만 아니라, 세월호 생존자, 트랜스젠더 군인,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기업노동자,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다. 강제로 군대에서 쫓겨난 피우진 중령과 변희수 하사의 신념도 읽을 수 있다. 말이 막히면 몸이 아프다. 아픈 사람이 이야기마저 못하면 병세는 더욱 악화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재난과 사회적 참사가 계속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