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0.
괌 현지 시간으로 00시 50분에 활주로에 착륙했다. 아, 감회가 새롭다. 13년 만에 밟아보는 미국령이다. 2013년에 미국 동부 워싱턴 D.C에 10개월 머문 이후 처음이다. 괌 날씨는 따뜻했다. 기온은 22도로 영하 13도였던 파주와 35도 차이다. 습도는 꽤 높았다. 촉촉한 느낌이 피부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상쾌하다. 여행이란 게 이런 거다. 피곤해 몸은 무거워도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 상태. 가족들 표정도 모두 좋아 보였다. 4시간 30분이라는 비행시간, 자정이 넘은 시간도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
입국장은 사람으로 꽉 찼다. 인천공항 출국장보다 더 붐볐다. 입국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입국을 심사하는 직원이 고작 4명 밖에 없었다. '여기도 비용을 절감하려고 그러나? 아니면 야간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적나? 아니면 유독 오늘 이 시간에 관광객이 많은 걸까?'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 괜한 억측은 그만두는 게 좋겠다. 1시간 가량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다. 풍채가 좋은 직원이 모니터를 유심히 지켜 보더니 밝은 표정으로 묻는다. "미국에 가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고 했더니 이것저것 더 물어보고 이래저래 더 답했다. 심사는 끝났다.
이번에는 렌트카 차례다. 아내가 미리 예약해둔 곳으로 가서 정보를 확인하고 차 열쇠를 받았다. 근데 열쇠를 받기까지 1시간 가량 걸렸다.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차량 반납하는 위치를 확인하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서로 간에 소통이 매끄럽지 않았나보다. 긴 시간 끝에 드디어 9인승 밴 차량 시에나를 만났다. 어라,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시동을 걸었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 나네? 전기차도 아닌데 이렇게 소리가 안 난다고? 알고 보니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하이브리드 차량이었다. 어휴, 고장난 줄 알고 괜히 긴장했네.
구글맵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GPS가 안내하는 데로 차를 몰았다. 새벽 시간 투몬Tumon 지역으로 가는 도로는 한산했다. 괌 주도인 하갓냐Hagatna 지역과 중심가 투몬 지역을 잇는 1번 도로인 마린 드라이브 Marine Drive를 지나 첫날 임시 숙소인 괌 플라자Guam Plaza에 도착했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30분 이상 걸린 것 같은 아주 먼 거리였다. 가로등은 부족해 계속 어둡지, 밤눈은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 뒷 좌석엔 나만 믿고 가는 가족들이 뜬눈으로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지, 무사히 도착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괌 플라자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가고나서 현지인 직원에게 괌 언어인 '차모로Chamorro'어로 '안녕하세요Hafa Adai', '고맙습니다Si Yo'os Maase'를 말했더니 정확한 한국어로 '고맙습니다' , '편히 쉬세요'로 화답해주었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언어만큼 세상을 이어주는 도구는 없다, 언어는 세상과 세상을 잇는 다리이자 친구가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여행 전에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꼭 익히자, 지금 하고 있는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자!
숙소 상태는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완공한 지 족히 20여년은 되어 보이는 환경이다. 가구, 바닥 타일, 벽지, 욕실 도구, 전자제품 등 모두 오래된 느낌이다. 1990년대 한국에서 붐처럼 일어나던 콘도미니엄의 2026년 상태랄까? 여행책에서도 괌 숙소는 최신 호텔이 아니면 대부분 낙후되었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 온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행복하다. 무려 세 번의 시도 끝에 당도한 곳이다. 괌에 다시 오더라도 안전에 문제가 있는 정도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겠다.
시간은 새벽 4시가 가까워 지는데 배가 고파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내와 동서랑 같이 주변 편의점을 검색했다. 동서가 차로 5분 거리에 주유소와 같이 운영하는 간이 마트가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그래도 한번 가본 길이라 조금 익숙해졌는지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마린 드라이브Marine Drive로 남쪽으로 조금만 가니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예쁘게 단장한 가게가 있었다. 이런 곳을 영어로 Gas station 이라고 한다나? 미국령 땅을 밟는 것도, 미국령 가게에 온 것도 13년 만이라 모든 게 반갑다. 당당히 주차를 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는 단정했다. 조명은 우아했고 매대에 진열된 상품은 모두 가지런했다. 가장 반가운 건 한국 컵라면이었다. 농심 육개장과 김치 사발면을 양껏 담고 빵과 과자를 듬뿍 골랐다. 오븐에는 남미대륙 국민간식 엠빠나다Empanada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고 길고 통통한 소시지도 노릇노릇 구워져 있었다. 집게로 몇 개 주워담고 냉장고 앞으로 갔다. 처음 보는 캔맥주를 가리키며 신나게 고르려던 찰나, 가게 직원이 '새벽 2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판매가 안 된다'고 했다. 맙소사, 이런 날에는 맥주가 필요한데... 계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컵라면은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싱거웠다. 아마 현지 입맛에 맞춘 거겠지? 같은 컵라면이라도 일본 오키나와, 오사카에서 구입한 농심 신라면은 면발도 더 굵고 건더기 크기도 더 실했으며 조금 더 매웠던 기억이 있다. 이곳 괌에서는 매운 음식이 그리 인기있는 건 아닌가보다. 맵고 칼칼한 걸 기대한 식구들은 아쉬워했지만 늦은 시간에는 이것도 감지덕지다. 장모님께서 준비해 오신 김치를 꺼내 라면과 함께 먹고는 주전부리를 들며 인천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과 장면들을 돌이켜봤다. 해가 뜨면 또 다른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겠지?
새벽 5시 무렵, 파장하고 침대로 돌아갔다. 몸은 이미 녹초가 됐다. 비행기에서 잠깐 눈 붙인 걸 제외하고 거의 22시간 동안 깨어 있는 상태다.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씻은 다음 식구들과 그대로 침대에 자빠졌다. 눕자마자 잠에 빠질 줄 알았는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안 오는 상태, 여행이라 시간이 아까워 조금이라도 뭘 더 하고 싶은 상태. 해 뜨는 시간은 6시 46분, 잠들자마자 해가 뜰 건데 그냥 그대로 날을 샐 건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잘까?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는 쪽으로 택하고 폰을 옆으로 던져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