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여행 2일차 (2).

2026.01.10.

by 우율의 독서

잠에 든지 얼마나 됐을까. 갑자기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깼더니 먼저 놀라 일어난 아내가 문쪽으로 갔다. 무슨 얘기가 오고가더니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한다. '아빠랑 엄마랑 주말 벼룩시장 간다고 차키 달래.' 그렇다. 처가 식구들은 놀이와 여행에 특화되어있다. 쉴 때는 쉬지만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뭐 하나 더 보려는 분들이다. '다리에 힘 있을 때 부지런히 다니자'는 주의다. 결혼 초기에는 의아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뭐 그러려니한다. 체력이 부칠 때는 당당히 '나는 더 쉬겠다'고 말하면서.


시계를 보니 오전 9시였다. 이참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갔다. 괌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만나는 태양이 동쪽 하늘에 짱짱하게 떠있다. 기온도 습도도 딱 좋다. 따뜻하고 습하지 않다. 통증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무릎이 아프지 않다. 14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아울렛과 쇼핑센터를 한 곳에 모아둔 장소가 도로 양 옆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아, 여기가 쇼핑천국이라고 하는 괌 중심 상가구나. 내가 여기서 뭘 살 건 없겠지만 투몬 지역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만 알아두어도 괜찮겠다. 그렇게 30여분을 걷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차모로 벼룩시장을 구경하러 갔던 처가 식구들이 도착했다. 한 손에는 한국 시골 장터에서 볼 법한 '검정 봉다리'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코코넛 과육을 담은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벼룩시장 풍경을 들었다. 규모는 작고 괌 현지인들이 많더라, 볶음밥도 만들고 바베큐도 하더라, 이제사 진짜 괌에 온 거 같더라. 숙소에 다 같이 모여 코코넛 주스와 과육을 맛 봤다. 주스는 달면서도 담백했고 과육은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맛이 있었다. '검정 봉다리'에는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하나에 2달러라는 그냥 평범한 옥수수.


딸아이와 조카도 차례차례 일어났다. 아침 메뉴를 이야기하다가 처제가 추천한 PIKA's Cafe가 낙점됐다. 한국인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만한 메뉴가 있고 숙소에서 얼마 멀지 않단다. 외출 채비를 하고 차에 타기 전에 선크림을 듬뿍 발랐다. 안 그래도 까만 피부, 더 타면 곤란하잖아. 식당은 차로 10분 거리, 마린 드라이브 888지역 세인트 존스 스쿨 맞은 편에 있었다. 소규모 식당가 정도랄까? 상가 중에는 한국어로 쓰여있는 간판도 보였고 중국어, 일본어도 보였다. 눈에 띄는 건 매매와 임대 소식을 알리는 표지판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PIKA's Cafe에 들어서니 이제 진짜 미국령에 온 거 같다. 직원들의 옷차림, 메뉴판에 적혀있는 영어, 테이블의 배치,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까지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져 이국적인 색채를 강하게 내뿜는다. 8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로 안내 받아 의자에 앉으니 이내 직원 한 명이 인사를 하며 식전 음료를 물어본다. '물 또는 커피 중에 어떤 걸 원하냐'는 아주 간단한 물음이었지만, 말문이 쉽게 트이지 않았고 식구들이 뭘 원하는지 이야기 나눈 게 없어 몇 초 동안 뜸을 들은 후 '얼음이 꽉찬 물 여덟 잔 주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제의 안내를 받아 베네딕트Benedict 3개와 볶음밥 3개를 주문했다. 베네딕트와 볶음밥은 재료가 각각 다른 것으로 골랐고 사이드 메뉴로 감자튀김과 콜라도 적절히 주문했다. 가게 내부 온도는 낮았다. 딸아이가 한기를 느껴 매니저에게 담요나 여벌 셔츠를 문의했지만 없다고 해 할 수 없이 음식이 나올 때까지 건물 밖 식당 앞에 앉아 있었다. 음식은 맛도 있고 양도 넉넉했다. 빵 위에 반숙으로 올라간 계란이 음식 전체의 맛을 부드럽게 해주었고, 소시지와 베이컨이 적절히 가미된 밥알은 기름을 고루고루 머금어 감칠맛을 마구 뿜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크로네시아몰에 잠깐 들러 딸아이가 입을 얇은 겉옷 한 벌을 사고 식구들끼리 다 같을 먹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늦은 체크아웃을 했다. 새벽에 체크인 한 손님에 한해 늦은 체크아웃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는데 그거 참 마음에 든다. 도로 건너에 있는 두짓비치 리조트Dusit Beach Resort로 숙소를 옮기고 방을 배정 받은 다음 래쉬가드로 갈아 입고 딸아이와 바닷가로 갔다. 옥색 바다는 고요히 잔잔했고 수평선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과연 이곳이 태평양의 한 부분이구나.


딸아이와 바다에서 노는 시간은 늘 즐겁다. 얕은 바다에서는 함께 수영하고 모래밭에서는 함께 모래성을 만든다. 해안가에서는 공놀이를 하고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튜브에 올라타 뱃놀이를 한다. 딸아이가 바다에 매력을 느낀 건 만 3살 때인 2021년 여름 무렵이었다. 일하던 직장을 정리하고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서 보름간 식구들과 보냈다. 사람 하나 없는 하도리 해수욕장에서 마음껏 놀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해 먹었다. 말이 늦었던 딸아이는 제주생활을 지나며 말문이 트였고 나는 딸아이와 더 가까워졌다.


해가 질 무렵 하갓냐 마린 드라이브 117E 지역에 위치한 크랩 대디 Crab Daddy라는 해산물 식당으로 갔다. 어두운 조명에 락 음악이 적절한 크기로 흐르며 고소한 버터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창밖에는 보슬비까지 내려 더 없이 완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우리 식구는 식당 모서리에 있는 조용한 테이블에 자리잡아 해산물 콤보 Seafood Combo 매운 맛, 순한 맛을 하나씩 주문했다. 음식은 끝내줬다. 매운 맛은 도파민을 뿜을 정도로 강렬했고 순한 맛은 엔돌핀이 돌 정도로 고소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요리였다.


긴긴 하루였다. 00시 50분에 공항에 도착해 03시에 숙소로 왔다. 06시 무렵 잠 들어 09시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4시간 덜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제도에 위치한 미국령에서 이른바 미국식 아침을 먹고 미국식 쇼핑단지에서 상품을 사고 미국식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압축적 근대화를 진행시킨 한국인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해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회사 일정상 월요일 새벽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운명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종일 깔깔 웃으며 보낸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괌 여행 2일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