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1.
푹 잤다. 밤 10시부터 한번도 안 깨고 8시간 내리 잤다. 몸은 개운하고 머리도 맑다. 오늘 일정은 돌고래 투어 딱 하나 있다. 아침에 출발해 정오 무렵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그 이후에는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동네 마실을 다니다가 해질 무렵 숙소 앞에서 열릴 야시장을 둘러볼 계획이다. 내게는 여행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회사 일정상 연차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걸 붙잡고 있어봐야 마음만 쓰라릴 뿐 나아지는 건 없다.
아내와 딸아이를 차례차례 깨우고 아침 먹으러 갈 준비를 했다. 07시 무렵에 숙소 2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만났다.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으나 그리 힘들지는 않은 거 같다. 역시 여행에 특화되어 있는 우리 가족! 나는 빵과 따뜻한 커피로 식사를 시작했고 샐러드와 쌀밥을 이어서 먹고 계란과 과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다섯 접시는 가져다 먹은 거 같다. 언제 어디서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게 내가 가진 최고의 장점같다. 웬만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먹으면 바로 소화되고 이내 허기가 찾아 온다. 동물에 가깝다.
08시 30분께 숙소 옆 두짓타니 리조트 1층 로비에서 한 달 전에 예약한 투어 버스를 탔다. 15인승 콤비 버스에 우리 가족을 포함해 3팀이 함께 했고 모두 한국인이었다. 가이드가 말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기서부터 대략 1시간 가량 이동할 예정이고, 가는 길에 에머랄드 비치에 잠깐 들러 10여분 옥빛 바다를 즐길 겁니다. 투어 현장에 도착하면 인솔자가 인원 점검을 한 후 함께 예약한 손님들과 함께 한 배에 탑승하여 돌고래가 있는 바다로 가게 될 겁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말하는 이 명쾌한 설명이 나는 참 좋다.
'에머랄드 비치'는 환상적이었다. 이런 색깔의 바다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짙은 파랑의 동해도 아니고 푸른 파랑의 남해도 아니고 뿌연 노랑의 황해도 아니었다. 말그대로 옥색의 투명한 바닷물이 내륙으로 흘러 들어와 장관을 연출했다. 키 작은 물고기는 떼를 이뤄 춤을 추고 해초 역시 저마다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와, 이런 곳이 정말 있었구나, 식구들과 꼭 다시 오고 싶다, 본가 어머니도 꼭 모시고 와야겠다, 아버지도 생전에 이런 곳에서 여유를 즐기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쌍하게 일만 하다 먼저 가버리셨네, 짠한 양반.
버스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부두에는 요트와 어선이 줄 지어 정박해 있었고 다른 업체를 통해 투어를 예약한 손님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함께 배를 타고 나갈 인솔자가 확성기를 들고 말한다. '반갑습니다. 약 30분 후에 배에 탑승할 예정이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돌고래가 있는 스팟에 도착할 겁니다. 돌고래의 움직임을 충분히 살피고 나서 스노클링과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30분 정도 즐긴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배에 타면 현지 직원이 말하는 안전지침을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이 방면에 잔뼈가 굵은 사람 같다.
배를 타고 현지 직원이 설명하는 안전 지침을 들은 뒤 라이프 자켓을 입었다. 안전조끼를 입는 건 군역을 마친 2009년 IBS 훈련 이후 처음이다. 왠지 신난다. 배는 선수를 남쪽으로 틀어 힘차게 돌진한다. 배 2층에서 보는 태평양은 말 그대로 크고 넓고 평온하다. 저 멀리 람람산도 보인다. 괌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람람산 트래킹은 무릎이 아프지 않을 때 꼭 하고 싶다. 정상에는 태평양 전쟁 때 희생당한 분들의 위령탑이 있다고 하니, 다시 이 곳에 온다면 사전에 관련 도서를 충분히 읽고 그 분들을 위로하고 싶다. 배는 마침내 스팟에 도착했다.
돌고래다. 진짜 돌고래다. 수족관에서 보던 그 돌고래가 아니다. 매끄럽고 날렵한 돌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친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절도있고 위엄있게 군무를 춘다. 날치도 있다. 물속에서 올라와 한번 날개를 펴니 수십 미터는 그냥 날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만나기 위해 이런 투어를 하나보다. 돌고래 투어를 얘기했을 때는 마땅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제주도 인근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넘치는 관광객들로 인해 등에 상처를 입고 있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인간이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판단하는 것은 참 어렵다.
이번에는 스노클링이다. 물안경과 호흡기를 끼고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바다 밑을 들여다본다. 이것도 장관이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왔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서워 바다 속으로 뛰어들지 못한 딸아이도 니모가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태평양 속으로 들어왔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다. 대체 어디에서 어떤 계기로 이 모든 생물들이 태어났을까? 대체 어떤 질서가 있길래 다툼 없이 조화를 유지하고 있을까. 인간은 참으로 위험한 생물임에 틀림없다. 조화를 거스리는 건 인간 말고는 없을 것이다.
투어는 끝났다. 숙소에 돌아오니 12시 30분이다. 씻고 옷을 널고 침대에 누우니 몸이 스르르 녹는다. 오늘 점심은 PIKA's Cafe에서 10여분 정도 더 가면 나오는 스테이크 가게다. 내가 살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나는 듀오링고를 켜 스페인어를 조금 연습하고 폰을 꺼내 오늘 일정을 메모했다. 오늘밤에 쌀 캐리어에 어떤 걸 넣고 어떤 걸 버릴 지 생각했다. 직원들과 나눠 먹을 간식은 저녁을 먹기 전에 숙소 앞 마트에서 사면 되겠고 괌 역사책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마이크로네시아몰에 들러 고르면 되겠다.
스테이크는 타무닝 지역에 있는 롱혼스테이크하우스에서 주문했다. 마린 드라이브와 14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가게로 토요일 저녁 식사로 먹었던 해산물 가게와 그리 멀지 않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는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하며 소고기는 한 두 점만 먹어도 물려 거의 찾지 않는다. 아내와 딸아이가 좋아해서 가끔 사서 구워 먹지만 나는 그저 두 사람이 먹는 걸 보기만 한다. 그래도 다같이 간 여행이니 내색않고 기분 좋게 주문하고 몇 점 맛있게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괌 역사책도 한 권 샀다.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