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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에 올라보니

엄마의가출일기


프라하의 모든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오가며 한 번은 꼭 만나는 것, 바로 구시가지의 천문시계이다. 천문시계에서 벌어지는 30초 남짓한 이벤트를 보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실 나는 이 작은 구경거리를 집으로 떠나는 날 보 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기에, 몰려있는 인 파를 구경하거나 해산하는 인파를 구경할 뿐이었다. 그래도 도 보투어 때, 천문시계에 대한 설명을 들어서인지 오며가며 시계 가 가리키는 곳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 보는 것은 꽤나 의미 있었다. 마지막 날 시계탑의 정각 이벤트를 본 것은, 마치 프 라하 여행의 마무리를 알리는 의식같아 좋았다. 


천문시계는 만들어진 600년이 훨씬 넘었는데, 실제로 마주보고 있으면 그 웅장함과 고고함에 기가 눌린다. 당대의 모든 기 술과 학문이 응축되어 있는데, 보고있노라면 어떻게 그 때 이 런 시계를 만들수 있었을까 하며 감탄하게 된다. 또 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천문시계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시계 뒷편으로 가면 당시 폭격을 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전 쟁이 끝난 뒤 3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하게 되는데, 아픈 역사 를 잊지 않기 위해서 시계 측면 후면부의 폭팔 흔적은 남겨둔 채 복원을 했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 역사의 흔적 을 그대로 남겨둔 것을 많이 보게된다. 그 또한 역사의 일부이 기에 과거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남겨 둔다고 하는 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지 않을까 싶다. 


도보투어를 할 때 가이드가 시계탑 위에서 보는 전망을 강력 추천하며, 일정 중 시간이 나면 꼭 올라가 보라 말했다. 게다 가 엘리베이터 한번이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니 얼 마나 좋은가! 오전에 프라하성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의 모습이 아름답긴 했지만 못내 아쉬움도 컸던터라 오전 투어가 끝나고 짬을 내어 시계탑에 다시 들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 ‘아, 내가 프라하에 왔 구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프라하의 전경을 한 눈에 담 음과 동시에 나의 트라우마가 몰려왔다. 날뛰는 심장은 풍경에 감탄하고 놀란 마음도 있겠지만 트라우마가 작동하여 식은땀 과 함께 동반된 두근거림이기도 했다. 나는 뚫려있는 곳을 무 서워한다. 아래가 뚫려있는 계단을 오를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손잡이 없이는 오르지 못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나를 본 다면, 저 여자는 공황장애라도 있나 싶을게다. 다리가 절로 후 들거리면서 손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계단뿐만 아니라 높 은 전망대나 발판이 뚫려있는 놀이기구, 케이블카도 마찬가지 다. 이곳 전망대는 사방이 다 뚫려있어서 내 심장은 요동쳤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아름다운 경치가 이겼다. 떨리는 손과 다 리를 부여잡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긴 모습은 내 눈에 담기는 이미지를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고, 절절거리는 다리와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심 장을 달래며 경치를 감상해야만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땀이 차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트라우마, 참 웃긴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 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극히 많은 데, 내가 뚫려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도 그 때문일테다. 처음에 이 ‘뚫린 공포’를 인지한 것은 스무살 때였다. 용산 아 이파크 몰의 중앙 야외공간에서 CGV 영화관으로 연결되는 계 단이 있는데, 그 계단은 아래가 뚫려있는 형태였다. 발을 한두 발짝씩 내딛는 순간 마치 내가 놀이기구를 타듯 심장이 뛰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기분 탓인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긴장했다. 


반복이 되다 보니 나의 트라우마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7살 때 유치원에서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었는데, 하필 내가 탔던 회 전그네가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허공에 발을 댄 채 멈춰있 던 나는 오줌을 지리기 직전이었다. 그때문인 것 같다. 멈춰있 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고 누군가가 다치는 상황도 없었는데, 그 몇분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나에게는 또 다른 트라우마 대상이 있다. 바로 비둘기이다. 아 주 어릴 때, 고모댁에서 닭 잡는 모습을 본 뒤로는 새를 무서 워하기 시작했는데 그 잔상이 비둘기에 투영됐다. 비둘기 목이 움직이는 모습, 부리, 발만 봐도 소름이 돋는다. 저만치 떨어 진 비둘기가 나에게 달려들어 공격할 것만 같아 심장이 간질간질 거리며 땀이 난다. 어른이 되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딸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거닐다 비 둘기를 발견하면 소리를 지르고 도망친다. 그 덕에 우리 딸은 비둘기를 보면 덩달아 소리 지르며, “엄마 저기봐요. 지둘기 (비둘기)에요. 무서워요. 저리가요.”라고 말한다. 못난 엄마 덕에 우리 딸에게 똑같은 공포를 심어준 건 아닌지 걱정이다. 


사방이 뻥 뚫린 전망대에서 트라우마가 몰려와 식은땀이 났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떨림을 부여잡고 펜스에 기대어 경치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멋진 모습을 딸 아이에 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는 조금 더 큰 세상 에서, 또 좋은 것만 보고 느끼며 크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었다. 뭐든 다 들어주는 지니같은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 족함없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며 시야가 넓은 아이로 자라나주 기를 바라는 마음. 


나의 엄마도 내게 이런 마음이었겠지. 못난 남편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살기 퍽퍽한 가계살림을 행여나 들킬까 딸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려 했던 그녀가 생각났다. 서울에 있는 대 학에 합격소식을 알렸을 때, 기쁨과 동시에 슬퍼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또 마음이 찢길듯한 슬픔에 괴로워 하다가 아이의 얼굴을 보면 눈물을 지우고 웃으며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르던 내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이것도 트라우마인가. 






나는 박쥐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지만, 

나중에 좀 더 자라서 사람들이 대부분 박쥐라면 기겁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움이란 과연 무엇일가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두려움이란
우리를 키워주는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 신시아 라일런트, 그리운 메이 아줌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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