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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엄마생각

엄마의가출일기


엄마라는 이름은 누군가의 눈물을 가장 쉽게 흘릴 수 있게 하 는 존재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존재, 엄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 왔네요 

엄마 이름만 불러도 

왜이렇게 가슴이 아프죠 

모든걸 주고 더 주지 못해 아쉬워 하는 당신께
난 무엇을 드려야 할지 


엄마 나의 어머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가장 소중한 누구보다 아름다운 당신은 

나의 나의 어머니 


- 라디의 엄마 중에서 - 




나에게도 엄마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다 른 딸들과는 다르게, 어쩌면 다른 딸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나 에게는 미워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랑 하는 마음과 똑같이 미워하는 마음도 반반인 애증의 관계라는 사실, 엄청난 고백이다. 


헌신적으로 나를 키워온 분이지만, 그녀의 나약한 모습 그리 고 아쉬운 선택들 때문에 내게 아픈 상처를 가득 안겨준 사람 이기도 하다. 그녀의 일생이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때의 선택지는 A뿐이었을거야 하는 이해심으로 극복하기에는 내가 조금 많이 아팠었다. 지금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순간에 도, 그때의 내가 떠올라 슬퍼지려 한다. 프라하가 낭만의 도시 라 그런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엄 마와 함께 그 낭만을 즐기려 온 모녀들이 가득하다. 카를교 다 리에서 프라하성을 멋진 배경으로 서로를 찍어주고 있는 모녀 도 애증의 관계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실 나는 그렇게 살가운 딸은 아니었는데, 엄마는 그런 나에 게 핀잔을 주곤했다. 나의 친구 유리와 비교하며 “유리는 참 살갑고 다정하더라. 우리 딸은 무뚝뚝하고 무섭기까지해서 무 슨 말을 못하겠다.”고 자주 말했다. 처음 고백하는 건데, 엄마가 그럴 때면 “유리 엄마도 참 다정하고 쿨하더라, 우리 엄마 는 무뚝뚝하고 소심하기까지해서 원...”이라고 맞받아치고 싶 었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었다. 나는 나쁜딸인 걸까?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저마다 다른 스토리로 저장되어 있다. 나에게 엄마의 모습은 헌신과 희생을 마다치 않는 모습으로 기 억된다. 그녀는 새벽 4시가 되면 어시장으로 향해 그날 판매 할 물건을 한트럭 싣고 왔고, 가게 셔터문을 혼자 여닫으며 모 질게 장사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열심히 사는 강한 엄마였다. 그녀의 전대에서는 항상 돈이 마를 날이 없었고, 그 때문에 나는 그녀가 엄청난 부자인줄 알았다. 내가 초등학생일때만 해도 그녀의 자신감 넘치고 무서운 모습만 보 았지, 나약하거나 슬픈 모습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성 인이 되고 약하고 소심해진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 모습을 받 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나의 엄마는 언제나 씩씩하 고 강할줄 알았는데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오니 낯설 었다. 


문득문득 스치는 기억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어느 날은 그녀 가 베개를 베고 돌아누워 울고 있었다.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 고 입술을 꽉 깨물고 흐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인기척이 들리 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나셨다. 어릴 때지만 그 이미지와 소리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 그렇게 슬픔도 들키지 않으려 꾹 참는 그녀였고, IMF가 오자 급격히 어려워진 형편을 숨기며 내색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내가 서울의 한 사립대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그녀는 가게 이모들과 함께 전대를 차고 목욕탕 의자에 빙 둘러 앉아 쪽파 를 까고 있었다. 쪽파를 까던 손을 털어내고, 박수를 치며 우 리 딸 멋지다를 외치며 웃던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보였다. 그때 사실 나는 조금 상처를 받았었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는 덜 기뻐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공부에 크 게 신경을 안 써주신 것 치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해온 나 름의 기특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엄청난 칭찬이나 격한 감동과 기쁨을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 내 기준에서는 형식적인 반응으로 보였다. 


결혼하기 전 엄마와 솔직담백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때 왜 그랬 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는 부채더미에 숨을 못 쉬 고 있을 때였는데, 지방 국립대에 소정의 장학금이라도 받고 가주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립대에 등록금 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기쁨도 있었 지만 실은 걱정이 더 앞섰다고 한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엄마가 그런 슬픈 얼굴을 해야만 했는지. 


왜 엄마에게서 두 얼굴이 보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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