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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가볍지 않은 이야기

엄마의가출일기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눈에도 엄마는 살기 고달파보였던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가 몸에 일찍이 밴 것 같다. 그래서 늦잠 한번 자지 않았고, 준비물부터 시작해서 무엇이든 알아서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내 감정따위는 드러내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나의 하루나 기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고, 고민을 나눌 형제 자매도 없었다. 


그렇게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우리 가족에게는 ‘대화’란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 가 필요할 때는 문구점에서 산 오백원짜리 편지지에 하고픈 말을 가득 적어 전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답장은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며, 편지와 관련한 내용을 대화한 적도 없다. 대신 “엄마는 너를 믿는다.”, “엄마한테는 너밖에 없어.”라는 주문 만 되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그 덕에 ‘바른생활 딸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공부도 잘해야 했고, 어른들에게는 칭찬을 자주 듣는 착한 딸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주문에 걸려들어 책임감이 아주 강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그덕에 공부도 그럭저럭 잘 해냈고 대학도 그럭저럭 잘 갔지만, 크게 기쁘거나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 속에 모든 의지가 100%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그 책임감은 좀 내려놓고 마음껏 청춘을 즐기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찬란한 20대를 보내려던 찰나, 우리 집은 쫄딱 망했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아빠의 잘 되는 사업 덕에 상류층은 아니었지만, 우리집은 꽤 잘 지냈었다. 그러나 그녀가 열심히 꾸려온 가게는 안개처럼 사라졌고, 그도 내게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아직도 어떻게 망했는지 두 분은 왜 그렇게 사이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내가 용기를 내어 두어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아파했고 흐느끼며 묻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에게는 분명 알 권리가 있었지만,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나를 알기위한 탐색과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은 사치였다. 학교는 휴학계를 내고, 알바의 신이 되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낮에는 영화관 스테프로, 오후에는 쪽집게 과외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밤에는 맥주잔 8개쯤은 한번에 번쩍 옮기는 호프집 신의 서버가 되었다. 그리고 나름의 전공을 살려 공익근무요원들의 옷을 제작하는 업체에 미싱보조 일자리를 구해 두달 바짝 돈을 벌기도 했다. 먼지를 마구마구 먹어도 쏠쏠한 일자리를 구했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그러고 밤과 주말에는 또 과외를 했는데, 우스겠소리지만 나의 첫직장 월급보다 많이 벌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치열하게 그러나 즐겁게 대학생활을 할 때, 나 또한 치열하게 그리고 힘겹게 1년을 보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어느 날은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누워있었다. 그 당시 식당 참모로 일함과 동시에 일주일에 두세번은 건설사 직원들의 숙소청소까지 해내고 계셨다. 그때만 해도 체력이 나쁘지 않으실 때인데, 그 더운 여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불 앞에서 식당음식을 해내고 30평대의 아파트 청소까지 해내는 것은 그녀에게 가혹한 일이 었다. 


힘없이 누워있던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서 나는 고소한 빵냄새에 단팥빵 하나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그마저도 망설이는 자신에게 울컥하셨다고 했다. 보통의 딸이었다면 엄마를 따뜻하게 꼬옥 안아줬을테다. 나는 엄마와의 스킨십이 7살 유치원 시절에 끝났기 때문에 그녀와 살이 닿는 것이 매우 어색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 아오는 길에 단팥빵과 도너츠를 사서 아주 무뚝뚝하게 툭, 머리맡에 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입술이 터질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울었다. 아빠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지나간 과거이 일에 대해,

가볍게 꺼내는 내가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 당시에 나한테는 절대 가벼운 일들이 아니었으니까. 


- 손힘찬,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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