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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션공주입니다만

엄마의가출일기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길을 걷다보면 뜨르들로, 일 명 굴뚝빵을 굽는 냄새를 흔하게 맡을 수 있다. 버터향 그득한 일반적인 빵굽는 냄새와는 달랐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밀 가루가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골목을 지날 때 맡는 버터향 가득한 빵냄새와는 달라 궁금했다. 여행 을 떠나기 전 프라하에서 꼭 먹어봐야 할 리스트에 올라와 있 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소라빵을 닮았다. 빵순이로서 어떤 맛 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해서 길을 걷다 말고 뜨르들로를 사들고 바로크와 르네상스를 넘나드는 구시가지 광장 한 가운데에 자 리를 잡고 한입 베어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것도 있고 초코를 가득히 채운 것도 있었 지만 설탕만 발려진 가장 베이직한 뜨르들로를 선택했는데 맛 이 없다. 그러니까 ‘에잇 맛없어’가 아니라 그냥 ‘무맛’이다. 그런데 묘하게 한입 두입 베어먹을 수록 아무 맛 안나는데 은 근 중독성이 있었다. 우유 보다는 맥주가 잘 어울리는 빵이었다. 그러나 다시 사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렛이 그득한 뜨르들로를 먹으면 맛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분위기에 취해 먹는 것인데 뭔들 맛 없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빵굽는 냄새에 이끌려 먹은 것 치고 맛은 없었지만, 그 냄새는 계속 생각난다. 아마도 그 향을 떠올릴 때마다 황홀했던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떠올라서 일테다. 나는 냄새, 향에 민감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냄새’를 좋아한다. 비누냄새, 로션냄새, 섬유 유연제 냄새를 특히 좋아한다. 이는 나의 어린시절 때문이다. 나의 엄마는 부 식가게를 운영하셨다. 부식가게는 채소, 과일, 생선, 반찬 등 을 파는 작은 가게를 말한다. 집과 가게가 함께 이어진 구조였 기 때문에 소란스러웠고 각종 냄새가 뒤섞여 있곤했다. 특히 영업이 끝난 저녁에는 고요함 속에 모든 주의를 후각에 집중시 키면 간마늘 냄새, 고춧가루 냄새, 생선냉동고 냄새가 내 코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면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인데 나는 아주 예민하게 냄새 하나하나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찾곤 했다. 그 냄새가 싫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의 전부를 대 주 는 엄마의 생계인데, 그녀의 일은 싫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 도 그 냄새가 싫었다. 


매일 고운 화장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친구 엄마가 부러웠다. 예쁜 옷에 고운 화장을 한 친구들 엄마와는 달리,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빨간 립스틱을 겨우 바르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옷에 전대를 차고 있었다. 그 전대 속에서는 내가 좋아하 는 것을 먹고 살 수 있는 돈과 함께 딸려 들어간 콩나물 대가 리와 각종 채소 잎들이 뒤섞여 있었다. 종일 가게일을 보시느 라 방청소는 할 겨를이 없으셔서 내가 집을 직접 치우곤 했는 데, 안방에서는 늘 간마늘 냄새가 베여있는 옷과 콩나물 대가 리가 우두둑 떨어지는 그녀의 양말과 파우치를 발견했다. 그것 들을 치울 때는 집게 손가락만을 활용했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 냄새가 베일까 싫었나보다. 그때부터 나의 로션집착은 시 작되었던 것 같다. 항상 손에서 마늘냄새, 생선냄새가 나는 엄 마와 달리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시 도때도 없이 로션을 발랐다. 그때문에 내 별명은 ‘로션공주’가 되었고, 여전히 나는 로션을 달고 산다. 


7살 이후로 엄마와의 스킨십을 멈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 린 시절 엄마와 손을 잡은 기억이나 포옹을 한 기억이 많지 않 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엄마가 엄하고 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 쩌면 엄마는 나를 무척이나 많이 만지고 싶고 안아보고 싶어했 지만 내가 그녀를 밀어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척, 많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그녀를 늘 존경했다. 아빠는 그럴듯한 옷에 매일 좋은 곳 만 다니는 것 같은데 그녀는 1년 365일 쉬는 날 하나 없이 세 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엄마 가 안쓰럽고, 불쌍하면서도 그녀의 에너지가 대단하다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 하는 위인을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그 대상이 엄마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엄마에게 그 내용을 전해주셨는데, 아 직도 그녀는 “우리 애는 어릴 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 고 이야기 했었어요.”라고 종종 자랑을 하시곤 한다. 


그런 그녀가 존경스러웠지만 엄마의 냄새는 느끼고 싶지 않은 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가 상 처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티내지 않았다. 그저 내 게서 나는 내음은 향기로웠으면 했다. 그 버릇은 고등학교 때 극대화 되었는데, 책상 위에는 대용량의 바디로션을 두고 쉬는 시간마다 손을 씻고 로션을 덕지덕지 발랐다. 내 용돈의 8할은 로션사는데 다 썼을것이다. 지금도 내가 머무는 자리 주변에는 항상 ‘로션’이 있다. 그런 나 때문에 나의 딸도 로션공주가 되 었다. 그 엄마의 그 딸. 


일요일마다 엄마와 목욕을 갈 때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목 욕 후 맛보는 단지우유의 달콤함 때문도 있지만, 나의 엄마가 제일 예뻐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목욕을 마무리 할 때 마다 샤워젤에 알갱이 같은 것을 섞어 거품을 잔뜩 내서 씻으 시곤 했는데 그 향이 참 좋았다. 그 알갱이 이름이 기억에 나 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크럽 같은 역할을 하는 제품이 었던 것 같다. 종종 그 톡쏘는 청량한 향이 그리워져서 비슷한 향을 가진 샤워젤 제품을 찾곤 했는데, ‘아! 그 향이다.’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샤워젤 후기를 읽다가 왠지 그 향이랑 비슷할 것 같은 제품을 발견했고 배송받은 후 뚜껑 을 열어 맡으니 그 옛날 목욕탕에서 엄마가 쓰던 샤워젤 향이 었다.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 바디용품. 나는 지금 그것을 쓰고 있다. 향을 맡고 있으면 어릴적 목욕탕의 추억이 이따금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향긋한 로션도 달콤한 향수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발냄새와 손냄새이 다. 엄마의 채취가 싫어서 로션에 집착하게 된 내가, 내 아이 들의 꼬리꼬릿한 발냄새와 1살 아들의 시큼한 손냄새를 제일 좋아하고 있다. 심지어 쉰내나는 손 냄새는 시도때도 없이 킁 킁 거리며 맡고 있다. 좋은 냄새도 아닌데 지금 내가 제일 사랑하는 냄새이다. 양말을 오래 신은 뒤 조금은 촉촉해진 그리 고 귀여운 꼬릿한 냄새가 나는 아들의 발에 일부러 코를 갖다 대고 킁킁 거리기도 한다. 남편은 변태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 도 하는데, 우리 엄마가 알면, “저 기집애는 어릴 때 그렇게 안 좋은 냄새에 기겁하더니만, 지새끼는 이쁜가보네.”라고 하시겠 지.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잠에 들면 엄마는 내 손을 만지작 거리 며 나의 손을 엄마 코에 가져가 뽀뽀를 하셨다는 것을. 나의 엄마도, 나의 냄새가 좋고 또 그리운 것이겠지. 지금의 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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