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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간절했던 소원

엄마의가출일기


그날 밤 두서없이 나의 아이폰 메모장에 답답하고 절망적이었 던 내 마음을 써내려 갔다. 


2013년 8월 11일
다시 돌아온 시련
또 혼자 짊어져야 할 산
내 일은 내 마음은 내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삶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엄마걱정, 돈걱정 


내 마음은 시퍼렇게 멍들어간다.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웃어야 하고 다 잘해내야 한다.
가슴이 쓰라려 오고 너무 아픈데,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 말할 곳이 없다. 힘내자, 또 지나면 될거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거야. 


바라고 바랍니다.
엄마에게 부디 아무 문제가 없기를...
단지 이제 좀 더 신경쓰고 주의하라는 일종의 경고였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그 불쌍한 여인이 이제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세요.
가슴이 아픕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그녀가 암이 아니기를, 그리고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방에 홀로 앉아 엉엉 울며 하느님 부처님을 외쳤다. 특별한 종교 없이 살았던 내가, 울부짖으며 하늘의 신 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2013년 8월 12일
엄마가 암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셨다.
윤주언니가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하다. 가슴이 쫄려온다.
아무 일 없을거라 중얼거리지만 힘들다.
딸 아이가 있다고, 그 애 곁엔 당신이 있어야 한다고 의사선생님께 살려달라 하셨단다. 

내 앞에서 가장 씩씩했던 나의 엄마가 그렇게 애원했단다. 가슴이 찢어진다.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실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신이 계신다면, 제발 착한 우리 엄마.
바보같은 그녀를 한번만 도와주세요.
그녀가 그동안 살아온 삶이 참 많이 고달팠습니다. 이제 행복해지게 해주세요. 제발...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살 만 하니까 다시 새로운 비극이 찾아왔다. 엄마가 암일지도 모 른다니, 도대체 나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빠와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에서 온전히 나 혼자 그녀를 책임져야 하 는 사실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가 내 곁에 서 영원히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함께 몰려왔고, 매일 밤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것 밖에는 없었다. 내 소원은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주시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 휴가를 내고 함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녀의 이름이 불리고, 떨리는 손을 꽉 잡고 선생님을 마주했다. 이상한 두려움은 빗나간 적 이 별로 없다. 


“암입니다.” 


그녀는 엉엉 울며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님. 이 아이한테는 나밖에 없어요.”를 몇 번이고 말씀하셨 다. 나는 울컥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목구멍으로 억지로 밀고 밀어넣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었다. 지금부터는 내 가 그녀의 보호자였고 강해져야만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 대로 걷지 못하는 그녀를 진정 시켰고,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 행정절차를 밟았다.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계속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것만 기억날뿐... 


“사망할 수 있습니다.” 


수술 당일날 아침,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 문구를 보고 도 사인을 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지만,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었다. 베드에 누워 수 술실로 향하는 내내 두손을 꼭 잡고 괜찮다고 금방 끝날거라고 말했다. 그 옛날 엄마의 토닥거림을 받던 내가 힘없이 떨고 있 는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수술실 앞에서 드라마 같은 작별은 없었다. 하고픈 말은 정말 많았는데 울먹이며 ‘엄마 사랑해’ 그 한마디를 겨우 전하곤 수술실 앞 문이 닫혔다. 화면에는 그 녀의 이름과 함께 수술 중이라는 글자만 남았다.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눈물을 계속 삼키고 삼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이라도 열심 히 다닐걸, 갑자기 내가 하느님 부처님을 찾는다고 내 소원을 안 들어주시면 어쩌지 싶었다. 그래도 지금 제가 너무 간절하 니까 부디 불쌍히 여기시어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이제 그 어 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발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제 발. 


그날 이후 나의 소원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다. 갖고 싶은 것 도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 그 자체가 되었다. 그들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도 혹독하게 깨달았다. 


이따금 이모의 전화가 걸려올 때면 긴장하게 된다. 

그 여름날의 전화 한 통이 계속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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