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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했던 소원들

엄마의가출일기


소원을 빌고 돌아서니 그간의  소원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주 어린시절에는 주로 친구집에 다녀오면 생기곤    같다. 친구네 갔다가,  집에 있던 물건이나 친구 엄마 아빠의 특별케어에 부러웠던 날에는 바라는 것이  생기곤 했다. 한번은 가영이 엄마가 롯데리아에 데려가 햄버거를 사주 셨는데 그때 처음 먹어  햄버거 맛은 신세계였다. 외식도  안하고 해봤자 고기나 회를 먹는 우리 가족은 상상도     음식이었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내가 21살에   햄버거  생애  번째 햄버거였다고 한다. 무튼 그날 이후로 맨날 햄버거만 먹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던가 우리 엄마도 친구 엄마 처럼 이런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는 아주 쓸데없는 소망 마저도 간절하게 빌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의 비교로 철없이 물욕에 사로잡혀있던 초 딩이었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느 날이 있다. 그때 당시 대 부분의 아이들이 갖고 있었던 책상과 침대가 너무 탐이나 엄마에게 마구 졸랐었다. 마치 책상이 있으면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런데 어느날 친구 근영이네로 놀러 갔고,  곳에서  깨달 음을 얻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근영이는 책상도, 침대  없이 나처럼 밥상에서 공부하고 요를 펴고 잠을 자는데   불만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물건이 없어도 괜찮냐는 물음에 그녀는 책상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말했다고  혀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내내 조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일기를 발견했었는데, 그때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졌었다. 왜냐고? 결국 책상이랑 침대를 획득(?)하여, 안그래도 좁은 방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물욕을 이길  없었나보다.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에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 깃든 소원을 빌었었다. 고등학교 시절 에는 학업 스트레스 탓이었을까 공부를 잘 하거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염원이었다. 그것은 부모님에게는 빌 수 없 는 것이라, 독서실에 앉아 다이어리에 주문을 부리듯 ‘나는 서 울에서 대학을 다닐 것이다’라고 쓰고 또 써내려 갔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지나고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다 2013년 8월, 28년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이어폰을 꼽고 들려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사귀와 그날 따라 시원히 부는 바람 덕에 더위도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었다. 그때 걸려 오는 이모의 전화. 이모가 내게 전화를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없었다. 흘러나오던 노래가 멈추고 액정화면에 뜨는 이모이 름은 뭔가 불길했다. 통화 버튼을 눌렀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애써 침착하려는 듯했다. 나는 무엇인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어색하게 안부를 물으며 말을 억지로 이어가다 전해진 엄마의 소식, 정확한 검사를 해봐야   있으니 너무 걱정말라는 그녀의 말을 뒤로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앞에 꽃길은 아니지만 순탄한 삶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28,  생일을 앞두고 나는 절망에 빠졌 . 결말이 아주 슬픈 드라마  비운의 여주인공이   했다.


엄마가 암에 걸리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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