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리그에 도전한 어떤 대투수를 떠올리면...
2021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었다. 집이라기엔 방에 가까운 공간에 세 식구가 옴닥옴닥 모여서 하루하루를 지지고 볶고 있었다. 까꿍이는 10개월차에 접어들어 무럭무럭 커 갔다. 둘이서 지내기도 크지 않은 집에 어린아이의 짐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마음에도 부담감이 채워졌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그냥 지금의 하루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존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바깥을 뒤덮은 역병을 핑계로 가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021년의 삼일절이었다. 소파에 기대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펜트하우스>라는 상류층 커뮤니티의 음모와 암투를 다룬 드라마가 방송 중이었다. 작은 글자의 안내문이 하단에 흘러 지나갔다. 방송사의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있을 예정이며, 원서를 접수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집분야에는 '라디오PD'라는 직군도 들어있었다. 배우자는 그 자막을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저기는 안 써 봐? 자기 라디오PD가 꿈이었잖아."
아이가 나온 뒤, 앞으로의 진로와 벌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던 터라, 배우자 역시도 마음 한켠에 나에 대한 걱정의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유독 그 자막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아휴~ 서른다섯짜리는 서류에서부터 걸러지지. 어디서 신입사원을 뽑아 줘."
"왜? 요새 공기업 같은 곳은 나이도 안 본다면서?"
"됐어~."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났는데, 불현듯 얼마 전 스포츠뉴스에서 보았던 양현종 선수의 결심이 떠올랐다. 안전하고 보장된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선수의 이야기가 마음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의 결실을 다 미루어두고 떠날 수 있다니' 하는 생각에서부터. '포기할 것이 그리 크지 않은 나조차도 지금의 것들을 포기한다면 주저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게다가 '아이도 셋이나 있는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그가 그렇게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세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뭐해? 안 자고? 컴퓨터는 왜?"
"이력서 써 보라며?"
"웬일로? 어차피 안 되는 거 안 쓴다더니?"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너무나 오랜만이었기에 복사해 와서 붙여넣을 것이 없었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자소서'를 뭐 괜히 '자소설'이라 하는 게 아니니까. 첫 번째 문항인 '입사 지원 동기'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꿈이란 무엇일까요? 야구팀 KIA 타이거즈의 양현종 선수가 2021년 미국 메이저 리그에 도전합니다. 양현종은 한국 프로 야구 무대에서는 ‘레전드’, ‘대투수’로 불리며 리그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며, 새로운 계약도 최고 수준일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 넷,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데도 먼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바로 꿈 때문이었습니다.
프루스트가 노래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립니다. 라디오 PD는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외근을 나가는 길에 아침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하루의 계획을 짚어 볼 때, 어머님의 일터를 채우는 DJ의 기합 소리와 함께 힘을 낼 때, 느지막이 집에 들어오는 길에 흘러나오는 선곡을 듣고 미소 지을 때 저는 프루스트가 섰던 단풍이 든 숲길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제가 이루지 못한 꿈 때문입니다.
오늘, 어떤 길로 걸어오셨습니까? 대개 매일 우리는 같은 길을 걷습니다. 출근길, 등굣길, 귀갓길. 대개 그 길은 제일 짧은 길을 고르게 되죠.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은 먼 길, 더 느린 길에서 더 아름다운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여행지에서 길을 헤매다 만난 작은 찻집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을 바꾸어놓기도 합니다. 저는 최근 3년 정도를 출판사에서 보냈습니다. 책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마케터로, 책을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모두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직업이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DJ의 목소리와 음악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활자로 해왔던 셈입니다.
양현종 선수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는지 나는 서류 심사와 필기 평가를 통과하고 면접 심사의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아쉽게도 면접은 '좋은 경험'이라는 결론으로 끝났지만 아주 좋은 것을 배웠다. 서른다섯의 나이도 면접에 불려가는 것까지는 문제 없다는 확신(혹은 착각)이었다.
양현종 선수의 2021 시즌은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마이너리그를 오가야 했으며, 간절히 바랐던 1승을 거두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의 양현종 선수를 떠올리면 빅 리그의 무대에서 공을 던지고 그 자체로 행복해했던 그의 표정이 생각난다. 그 순간에 그가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순전히 뇌피셜이지만, 자신이 꿈꾸던 것에 가까워졌을 때, 엄청난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것이 이후의 인생에도 큰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양현종 선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투수'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던지는 모든 공과, 만들어 내는 모든 기록이 한국 프로 야구의 역사가 되고 있다. 만약 그가 미국으로 떠난 1년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기록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시즌이 2021년이며, 가장 아름다운 기록은 빅리그 도전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감정이 깊이 개입된 평가라 할 수 있다.)
여차저차 이러저러한 날들을 지내고 2021년 겨울,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입사하게 됐다. 서른다섯의 신입사원으로. 최종 합격 발표가 난 날은 엄청나게 기뻤다. 양현종 선수를 찾아가서 뽀뽀를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러 제약으로 이유식을 먹고 난 까꿍이에게 대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이제 해피엔딩! 성공! 대박 인생 시작이다! 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이란 2021년에 멈추지 않았다. Life goes on. 나는 2025년인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하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가끔 당시의 순간을 떠올린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순간들을. 어떤 전환점은 인생을 더 어두운 곳으로도 끌고 가고, 어떤 전환점은 짜릿한 도약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후회스럽고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는 어떤 한 순간의 성공과 실패가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니, 안다기 보다는 믿는다고 해야 하나? 새로운 길은 생각보다 쉽게 가볼 만하고,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했던 길도 리셋이 필요할 만큼 크게 잘못된 길도 또 없는 것 같다. 그냥 매일매일의 타석에 서고, 내 스윙을 하고 나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장렬하게 삼진을 먹고 나오더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려고 예전 자기소개서를 뒤져보니, 그때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써 놓았더라. 본인의 가장 큰 성공 경험과 가장 큰 실패 경험에 대해 쓰라는 문항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써 놓았었다.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의 간판선수라 할 수 있는 ‘너구리’ 장명부 선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비극적인 실패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말로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장명부의 인생은 그의 마지막 선언으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황은 모두에게 제각기 다릅니다. 주어지는 환경에서 가장 나은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까지 저의 인생에 실패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택은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었습니다. 비록 땅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그저 가을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성장해서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매일의 시간을 지키는 한두 시간의 방송이 반복되어 역사가 되듯이 말입니다.
홈(home) 베이스는 왜 ‘홈’이라 부를까요? 야구는 ‘홈’에 돌아오는 경기입니다. 선수가 베이스를 돌고 돌아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납니다. 베이스로 진루하기 위해서는 안타, 볼넷 혹은 도루를 해야 하고, 장타와 홈런을 치기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매번 작은 성공들을 쌓아야 집으로 돌아와 점수를 낼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매일이 야구 경기 같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기획하고, 계약하고, 만들고, 알리고, 팔고, 다시 만드는 일을 곧잘 해내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단타 정도는 때리는 쓸만한 선수 같습니다.
지난해 5월 소중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때 체감했습니다. '비로소 나에게 홈 베이스가 생겼구나.' 매일매일 이루는 작은 성공들이 이제는 정말로 저를 홈 베이스로 데려다주는 것 같습니다. 그때 또 깨달았습니다. 이제야 나의 야구가 진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요. 저는 전파 건너편에 저처럼 늘 매일의 타석에 서는 사람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들과 그들의 매일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매일의 타석이, 매일의 야구가 인생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 하루하루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 시즌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까꿍이와 새로 태어난 팀메이트 까꿍2의 시즌은 또 어떨까?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우려스럽지만, 그때마다 2021년의 어떤 투수를 떠올려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