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으면 다 좋을까?
어제, 야구가 끝났다, 아니, 어쩌면 그제였을까, 모르겠다, 크보앱으로부터 알림을 받았다. <0:3 경기 종료. 다이노스 준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졌잘싸임.> 이걸론 알 수 없다. 아마 그제였겠지.
헛헛한 가을이 되니 또 시즌이 마무리되고, 지난 한 해의 경기들을 하나씩 곱씹게 된다. 인생의 전환점에 이르러 지난날을 회고하는 인간처럼, 후회스러운 경기들과 원망스러운 경기를 돌아본다. '이 경기를 이겼으면, 이때 끝내기를 안 맞았으면...!' 그럼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인생이 계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를 인생의 비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또 그렇게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인생과 야구와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자꾸 이런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봄이 되면 대학 신입생이 된 것마냥 들뜨고 격정에 찬 이야기를 하고 싶을 테지만.......
야구를 거의 30년 가까이 보아 오는 동안 나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선수들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선수들과 동일시하던 청년 시절도 지났다. 지금은 또래이던 선수들도 많이 은퇴하고, 코칭스태프로 일하는 선수들도 많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기억들이 쌓였다. 자꾸 옛날 일을 떠올리고, '2020 시즌에는', '2015 시즌에는' 하면서 '라떼는' 하면서 지난 기억을 꺼내게 된다. 평소에는 다 잊고 살았으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면서 말이다.
둘째를 키우면서 옛날 첫째가 꼭 그 만할 때가 생각이 많이 난다. 아무거나 입으로 가져가서 침을 잔뜩 묻혀놓는 시기가 왔다. 첫째도 꼭 그랬는데 가만히 있을 때도 침을 줄줄 흘린다. 손가락을 쪽쪽, 아니 주먹을 통째로 쭉쭉 빠느라 옷을 다 홀딱 적신다. 심각한 얼굴로 힘을주고 기저귀가 터져 나가도록 응가를 한다. 그러면 '아이구 증말'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애를 씻기러 간다. '너도 언니랑 똑같구나.' 그러면서 지난 이야기를 꼭 하게 된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 산다.
배우자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둘이 공유하고 있는 옛날의 기억은 예쁘고 귀여운 것만 있는 것 같다. 초보 엄마 아빠에게 얼마나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 많았을 텐데, 나쁜 건 다 까먹고 즐겁게 깔깔 웃는 일만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진다. 둘째가 떼를 부리고 소리를 지르면 이상하다. 첫째는 순하게 방실방실 웃다가 곧 잠들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러지? 그런데 아마도 이상한 건 우리의 기억일 것이다. 예쁘게 퇴색되어서 좋은 것만을 기억한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 예쁘게 단장하며 산다. 어른들이 자꾸 애 낳으라는 잔소리를 하는 것은 역시 그들 머릿속에도 과거의 어떤 순간이 계속 기억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좋은 날만 기억하면서, 좋은 기억만 반복하면서 살면 좋을 텐데, 가끔은 미안함이나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 기억은 좋은 걸로 덮어씌우질 못하고 계속 비슷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강렬하게 다시 떠오른다. 부디 어린이들은 좋은 기억의 비율이 높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린 좋은 기억들만 남겨두었는데, 그때 실은 이랬다면서 아픈 기억을 이야기한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뭐, 시간이 흘러 보아야겠지...
다이노스는 올해 마지막 아홉 경기를 모조리 이기면서 가을야구에 턱걸이를 했다. 가을야구의 첫 경기를 또 잡아 내면서 기적을 하루 더 이어 갔다. 그러나 시즌 중에는 정말... 우여곡절도 많고, 슬픈 일, 화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기적적인 마무리 덕분에 최종적으로는 좋은 기억으로 이 시즌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좋았던 것만 기억에 남기게 되겠지. 내년에 아픈 선수가 없어야 한다. 힘겨운 올해를 보내면서 무리했던 것을 잘 보듬어야만,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만, 그래야 이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텐데 싶다. 뭐, 시간이 흘러 보아야겠지...